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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숲 속 도서관, 풀뿌리 방송...관심 가지면 'DIY 여가'는 천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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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16면

3일 오후 5시 서울 둔촌2동. 김영준(46)·황원희(47)씨 부부가 도시 텃밭에서 아들 강(6), 딸 건희(6)와 함께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아이들 키우랴, 가정살림 하랴 정신없는 이들 부부에게 16㎡짜리 텃밭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김씨 가족은 이곳에서 가지·시금치·근대·상추·토마토 등 7종의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황씨는 “아이들이 매일 자기가 심은 채소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러 오자고 보채서 매일같이 오고 있다”며 “늦은 결혼에 낳은 쌍둥이 자녀들과 함께 텃밭을 찾는 것은 일상 속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도심 속에서 즐기는 슬로라이프

강동구는 지난해부터 강일동(1400㎡)·명일동(480㎡)·둔촌동(2700㎡) 등 관내 3곳에 도시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한 계좌인 16㎡의 땅이면 4인 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이용료는 연 5만원이고 모종·씨앗·농기계 등은 구청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빡빡한 일상 속에서 현대인에게 여유란 없는 것일까. 주말이라고 미뤄뒀던 잠만 자기에는 너무나 억울하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도심 속에서도 각자 생활 패턴에 맞게 여유로운 ‘슬로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다.

산록을 벗 삼아 문학 작품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관악구에서는 지난달 25일 관악산 입구 매표소를 리모델링해 ‘관악산 시(詩) 도서관’을 개관했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이해인 수녀의 『민들레의 영토』 등 시집 4000권이 소장돼 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등산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시 한 수씩 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을 개관했다”며 “무작정 산길을 오르는 것보다 시집 한 권을 빌려 중턱이나 정상에서 읽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승님 앞에서 시 한 수 읊어보고자 하는 시민들은 문학 강좌를 통해 영혼의 양식을 얻을 수 있다. 서초구청에서는 12년째 이어지는 무료 시 문학강좌가 매주 한 차례씩 진행된다. 강사는 박목월 시인의 아들인 박동규(72) 서울대 명예교수. 박 교수는 시민들에게 시 작법을 가르치는 한편, 시 습작을 날카롭게 비평해 준다. 그동안 이 강좌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 20명을 넘어선다. 매년 말에는 회원들이 모여 시 낭송회를 여는 한편, 동인집을 발간한다. 매달 수시로 신규 회원을 모집한다.

매스미디어에 지친 시민들이 참신한 방송을 선보이기도 한다. 사용자제작콘텐트(UCC)를 제작해 인터넷 포털을 통해 방송하거나, 풀뿌리 라디오방송국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방송을 내보내는 식이다. 풀뿌리 라디오는 반경 5㎞ 내외에서 청취가 가능한 소출력 FM 주파수를 이용해 시민 스스로가 방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송국으로, 수도권에는 마포FM, 관악FM, FM분당 등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주부에서 PD를 꿈꾸는 대학생까지 다양한 자원활동가들이 활동한다. 인터넷 방송 전문가인 윤상필 경민대학 초빙교수(스피치 커뮤니케이션)는 “자극적·반복적인 영상을 주입하는 기존 미디어에 지친 시민들이 인터넷이나 풀뿌리 라디오 등 ‘가정식’ 같은 대안 미디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공부에 찌들어 있는 중·고생 자녀들에게도 슬로라이프를 누릴 여지가 있다. 마포아트센터에서는 11일 교과서음악회 ‘학교 가는 길’을 개최한다. 베토벤의 ‘비창’, 슈베르트의 ‘송어’ 등 교과서에 수록된 클래식 명곡들을 즐기면서 ‘내신 공부’도 함께할 수 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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