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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쿵푸 팬더 주인공>의 출생 비밀에 한국적 정서 담았다

미주중앙

입력

1편 스토리 총괄 역할서 3년 만에 / 할리우드 메이저 애니메이션 연출 /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으로 도약
부모님 사랑·가족의 소중함 심어 /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력하면 /
인종·성별 상관없이 성공 할것

흥행 대박 행진 중인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2'의 제니퍼 여 넬슨 감독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 조용하고 여리고 나긋나긋한 여인에게서 어찌 그런 폭발적 에너지와 다이내믹한 액션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사실이다.

'쿵푸 팬더 2(Kung Fu Panda 2)' 와 이 영화를 연출한 제니퍼 여 넬슨(한국명 여인영) 감독의 얘기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으로 기록됐다.

그리고 자신의 감독 데뷔작인 이 작품을 통해 웃음과 눈물 드라마와 액션이 공존하는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해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 영화가 개봉 첫 주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흥행 수입이 무려 1억 2600만 달러다. 어마어마한 성공이다.

지난 1일 글렌데일에 위치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니퍼 여 넬슨 감독을 만났다. '쿵푸 팬더 2' 홍보로 바삐 전세계를 누비다 개봉과 함께 겨우 한숨을 돌리던 차였다. 여 감독은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3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좋아 아주 흡족해요. 한 달 반 전 마지막 후반 작업을 끝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이제 됐다' 싶더라고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영화 한 편을 '제대로'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덕이겠죠. 무엇보다 관객들이 영화를 너무 사랑해준다는 점 또 해외 관객들의 호응이 좋다는 점이 기뻐요."

1편에서 스토리 총괄로 활약했던 여 감독은 3년 만에 '쿵푸 팬더 2'의 연출자로 화려하게 도약했다. 승진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 없이 좋은 작품 만들기에만 정성을 쏟는 그녀의 열정과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제작사 드림웍스는 여 감독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제작비 부담없이 마음껏 만들라'고 독려하며 창의력을 120% 발휘할 수 있게도 해줬다. 엄청난 신뢰였다.

"처음 감독직을 제안받았을 때는 두려움이 앞섰어요. 수줍음도 많아 주목받는 위치에서 일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냈다.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함께라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는 대신 차분히 협동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먼저 함께 일할 모든 부서 사람들을 다 만나 제가 추구하는 영화의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했죠. 모두가 동일한 목표와 그림을 갖고 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누구든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어요. 덕분에 스태프 전체가 한결 편하고 행복하게 작업을 한 것 같아요."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해서는 영화가 액션과 감동 유머의 삼박자를 고루 갖출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관객들이 주인공 팬더 포와 하나가 돼 그의 여정에 함께할 수 있도록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는 데도 공을 들였다. 영화 속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소중하지만 특히 여 감독은 주인공 포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장면을 최고로 꼽는다.

"그동안 수백 번도 더 본 장면인데 볼 때마다 '이번엔 안 울어야지' 하면서 또 눈물을 쏟게 돼요. 한국적 정서가 많이 묻어나는 장면이기도 해요. 부모님의 사랑 가족의 소중함 등 제가 자라면서 배워 온 한국적 가치를 포에게 대입시켜 봤죠. 바로 그 점이 포를 더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 혼자 잘나서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 아파하고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이 완성된 거죠."

4살 때 이민 온 여 감독은 어려서부터 만화 보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다.

"어머니가 그림을 정말 잘 그리셨어요. 매일 밤 세 자매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머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다 따라 그리곤 했죠. 집에 흰 종이가 남아나는 날이 없었어요. 장난감 대신 언니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을 만들며 놀았죠. 지금은 세 자매 모두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랍니다."

특히 '로보트 태권브이' '톰과 제리' '독수리 오형제' 같이 신나고 명랑한 만화를 좋아했고 '블레이드 러너'나 '에일리언'같은 공상 과학 영화에 심취했다. 용이나 괴물 그림도 즐겨 그렸다. 무한한 상상력과 생동감 넘치는 액션을 연출해낼 수 있는 여 감독의 역량은 이때부터 조금씩 자라왔던 것이다.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기보다는 무엇이든 즐겁게 하라고 가르치신 부모님의 교육도 그녀의 창의력을 기르는데 좋은 자양분이 됐다. 전액 장학금으로 UCLA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평생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아티스트의 길을 가기 위해 캘스테이트 롱비치에 진학해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기로 결심하는데도 부모님의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업'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던 시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시기라 고통은 더 컸다.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았어요. 스트레스도 엄청났죠. 막내딸이 첫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아버지께 보여드리지 못해 슬프기도 했고요. 하지만 '조금 못 하면 어때'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마음 먹고 나니 모든 게 한결 쉬워지고 다시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일을 더 열심히 할수록 삶이 더 즐거워졌어요. 스스로에게 보다 너그러워야 더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지요."

여 감독은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 감독으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수 있어 영광"이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아시안이건 여성이건 상관없이 좋은 아티스트 좋은 감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연습과 노력 없인 누구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어요. 저도 하루아침에 감독이 된 것은 아니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이요? 일단은 몇 달 푹 쉬어야죠. 언젠가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쿨한 어드벤처 액션 영화를 실사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한 여든 살쯤 되면 이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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