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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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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1. 청산별곡 <⑤>

일러스트=이용규

우리가 이렇게 건너는데 고려군보다 훨씬 힘이 센 몽골군들이 왜 이 가까운 해협을 건너지 못하겠는가. 고려 조정이 천도할 때 건넜던 개경 쪽 승천포와 강화 쪽 승천포는 그야말로 지척이다. 몽골군은 그간 강화도 해협을 못 건너온 것이 아니라 안 건너온 것이다. 몽골군이 내륙 깊숙한 유목국가의 병사들이라서 수전 경험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들은 이미 무수한 강을 건너 세계를 정복했다.

 그런데도 왜 이 바다를 안 건너온 것일까. 숱한 의문과 추론이 꼬리를 물었지만 나는 현재에 충실하자고 생각을 다잡았다. 지금은 황도 개경으로 책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엉뚱한 각수장이 김승이라는 작자가 던진 해괴한 내용의 그림들과 마리아나 이수 따위의 낯선 용어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어느새 군선이 선착장에 고물을 대고 있었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어요.”

 벽란나루는 초토화돼 있었다. 전쟁 직전까지도 이십여 개 나라의 외국 상선과 지방에서 올라오는 세곡선, 기찰선, 어선들로 북적댔던 개경의 외항은 처참했다.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관사 벽란정은 물론 나루터에 즐비하던 객관과 세계의 만물상을 차려놓던 상가들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몽골군들이 불태운 항구를 반란군과 초적, 화적패가 다시 덮쳤소. 토벌에 나선 관군들도 불을 질러야 했고 말이오.”

 군선의 지휘관인 별장이 저간의 사정을 일러줬다.

 “아무래도 말은 배편에 되돌려 보내야 할 듯싶구나.”

 배에서 내리기 전, 수기 스승이 말했다. 몽골군의 네 번째 침입 뒤끝이었다. 승려가 말을 타고 점령지에 들어가는 건 표적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을 패대기쳐버린 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백성들이었다. 그간 많은 토지를 점유하고 수탈해온 승가에 품는 불만도 관에 대한 적개심 못지않았다.

 “도승통 스님, 돌아갔다가 집정 나리의 야별초군들과 함께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별장이 우려의 눈빛을 하고서 제안했다.

 “아닐세. 우리 둘이 조촐하게 잠행하면 되네. 말은 승천보 군영에서 거둬주게.”

 우리를 적지에 부려놓은 군선은 서둘러 뱃머리를 돌렸다. 거지꼴을 한 난민 무리가 달려들어 손을 내밀었다. 헐벗은 그들의 몰골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누렇게 뜬 반쪽 얼굴에 퀭한 눈이 해골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강화도에 들어와 성곽 돌을 지거나 간척지에 흙을 져 나르면 주린 창자라도 채울 수 있으련만 속박 없는 자유를 택한 저들은 배를 곯아가며 죽어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마라. 껍데기 벗겨지고 싶지 않으면.”

 바랑을 벗으려던 나를 스승이 매몰차게 경고했다. 스승은 무자비한 기세로 휘적휘적 내달아 항구를 벗어났다. 참 야박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최선책임을 이내 알아차렸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섣부른 동정은 화를 부를 뿐이었다. 나라님도 해결하지 못하는 전란 중의 지옥 같은 굶주림이었다.

 여기서 황궁까지 사십 리 길은 단청한 기와집으로 이어진 화려한 거리였었다. 양옆으로 여섯 자씩 달아낸 처마는 햇볕과 비를 막아주었다. 어릴 적 기억은 손에 잡힐 것처럼 생경한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시체가 뒹굴고 시궁쥐와 도둑고양이가 얼쩡대는 폐허의 거리였다. 해 저물 녘 다시 찾은 황도는 유령의 도시였다. 꼭 환각만 같았다. 나는 그 옛날의 소년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누가 한 소년의 기억 속에 깃든 그 찬란한 황도를 이렇게 파괴했더란 말인가. 그 잘난 무인들의 천하에서 외침으로 인해 황도가 부서졌다는 게 말이 되는가.

 스승과 나는 자남산 아래 주막집에서 새우잠을 잤다. 벼룩과 빈대가 극성인 데다 왈짜패가 밤새 노름판을 벌여서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궁성을 찾았다. 궁성은 모두 불태워지고 잿더미 속에 주춧돌만 드문드문 보였다. 북쪽 현무문 못 미쳐 보문각도 깨끗이 타고 없었다. 스승은 한숨을 쉬었다.

 “보문각의 그 많던 장서가 잿더미로 변했구나.”

 나는 망연자실해 있는 노스승을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 뒤쪽 건물은 제법 온전한데요.”

 나는 보문각 자리 북쪽을 가리켰다.

 “궁성 내 세 개의 사찰 가운데 하나인 내제석원이다. 이 화탕지옥 판에서 가까스로 화재를 면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스승은 참회진언을 외웠다. 우리는 지붕의 기왓장이 부서지고 풀이 무성한 제석원 건물로 들어갔다. 마파람에 풍경소리가 울렸다. 인기척을 듣고 봉두난발한 각설이들이 몰려나왔다. 그 가운데 몇몇은 팔다리를 잃은 반편들이었고 한 여인은 만삭이었다. 각설이들도 전쟁의 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새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산다는 건 이처럼 대책 없는 일이던가.

 “댓바람부터 웬 중놈들이냐?”

 왕초가 벌레 씹은 낯빛으로 뇌까렸다.

 “우라질! 오늘 동냥 잡쳐버렸다. 재수 옴 붙었어.”

 스승의 발밑에다 가래침을 탁 뱉는 자도 있었다. 나는 속이 뒤틀렸지만 표정을 말끔히 지우며 물었다.

 “이곳 스님들은 어디 계신지요?”

 “알게 뭐야. 백성들 피 빨아먹는 왕실에 빌붙어 살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지니까 쥐새끼들같이 산으로 바다로 내뺐겠지. 중놈들 염불로만 중생구제지 실은 죄다 저 살 궁리뿐이야. 위기가 닥쳐보면 실상이 죄다 드러난다니까.”

 왕초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혹시라도 근처에 승려들이 사는 곳을 아는지요?”

 “황성 동북쪽 성벽 너머 귀산사에 중놈 몇이 사는 모양 같더만.”

 입만 열면 요란하게 튀기는 침에 섞여 중놈이라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간 호사를 누려온 승려들이 지은 죄가 많아서 우리가 대신 홀대받는 것이려니 여기고 머리를 숙였다. 동냥을 위해서라면 안 가는 데가 없는 각설이들을 만나 정보를 얻어들은 건 그나마 행운이었다.

 울창한 송림이 하늘을 가리는 산길을 탔다. 깔끔한 너럭바위 밑으로 푸른빛이 도는 옥 같은 계류가 금강경을 읊조리며 흘러내렸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귀산사 승려들이 채마밭을 가꾸고 있었다. 말이 중이지 행색이 영락없는 농사꾼들이었다. 내가 수기스님을 모시고 예까지 온 이유를 말해주자 그들은 깜짝 놀라며 몇 가지 확인절차를 거쳤다.

 “불은이외다. 안화사 어서전(御書殿)에 가보십시다.”

 한 승려가 길을 안내했다. 안화사는 왕이 와서 머무르는 재궁(齋宮)과 서재까지 갖춘 절이라고 했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은 나무다리를 건너고 정자를 지났다. 몇 마장을 더 올라가니 안화문(安和門)이 나타났다. 이 전란 중에도 온전히 보전된 안화사는 규모가 큰 절집이었다. 무량수전에 들러 예를 갖추고 주지를 접견했다.

 “고려국 삼장법사로 통하는 그 유명한 수기스님을 뵙니다.”

 주지가 절을 올렸다. 수기 스승도 맞절을 했다. 삼장(三藏)이란 석가의 가르침인 경(經), 실천규범인 율(律), 철학체계인 논(論)을 담은 세 광주리의 불경을 말한다. 수기 스승은 대장도감 일을 맡기 전에 이미 삼장을 두루 꿰뚫었다고 한다. 초조대장경이 불타자 스승은 논산 개태사에서 강화도로 불려 올라오셨다. 목재를 베어 말리고 전국의 숙련된 각수장이들을 파악하고 똑같은 서체로 경전을 베낄 필경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급한 것이 재조대장경 목록 작성이었다. 그 방대한 목록을 작성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어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수기 스승이 천연덕스럽게 짐 꾸러미를 열어 대장경 목록 초안을 꺼내놓았다. 이런 때가 올 줄 예견하고 대비해온 사람 같았다. 모두가 경이로운 일이라고 찬탄했다. 하늘은 사람을 기다려 그에게 큰일을 맡긴다는 옛말이 과연 틀림없었다.

 “이곳 어서전에 보문각 문헌을 옮겨온 것입니까?”

 수기 스승은 점심으로 내온 요깃거리 앞에서 문헌부터 물었다.

 “거친 조밥이지만 요기부터 하세요. 이따 은밀한 데로 모시지요.”

 주지의 그 말은 스승과 나를 더 안달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서둘러 공양을 마치고 인적 없는 뒷산 길을 탔다. 한참 만에 송악산 동쪽 줄기 외성의 안화문 근처에 다다랐다. 주지는 오솔길을 벗어나 커다란 바위벼랑길 아래로 내려갔다.

 “직제학 어르신, 대장도감 수기 도승통께서 오셨습니다.”

 주지가 아래쪽에 대고 외쳤다. 우리는 주지를 따라 내려갔다. 두껍게 쌓인 낙엽에 발목이 빠졌다. 그만큼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동굴 안에서 백발노인이 동자와 함께 나왔다. 속기를 벗어버린 도인의 풍모였다. 매 눈처럼 날카로운 수기 스승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맑고 그윽한 눈빛이었다.

 동굴 입구에 널찍한 누각이 들어서 있었고 마루 밑에 커다란 항아리들이 즐비했다. 보문각 장서들을 옮겨와 보관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십육 년 전 일이로군요. 최이 집정과 그 족당, 왕이 차례로 승천포를 건너 강화도로 이주했소. 장마철이고 적들이 다시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나돌아서 워낙 경황이 없었소. 길에서 수천 명이 죽어 나자빠졌소. 홀아비와 과부, 고아의 울음소리가 천둥·번개 내리치는 진흙탕 속에서 아비규환을 연출했다오. 보문각 직제학이었던 나는 차마 분신 같던 책들을 내팽개쳐 두고 떠날 수가 없었소. 그래서 식구들을 설득해서 남기로 한 거요. 개경 황궁에서는 반란군과 초적들의 노략질이 벌어졌소. 우리 식구들은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책들을 안화사로 옮겨놓았던 거요. 그런데 절집도 불태워지기 일쑤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소. 결국 이곳으로 다시 옮겨놓고서 오늘까지 이렇게 지켜온 것이라오.”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주지가 식구들의 행적을 일러줬다. 마나님과 손자들은 전란에 희생되었고 두 아들과 며느리는 모두 몽골군의 포로로 잡혀갔다는 것이다. 기막힐 노릇이었다.

 “직제학 어르신과 가족의 거룩한 희생으로 문헌의 나라 체통을 지키셨구려. 참으로 고맙습니다.”

 수기 스승은 노인의 손을 잡으며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내 직분을 다한 것뿐이오. 팔자가 사납지만 허물은 없는 삶이었노라고 믿소이다.”

 강단 있는 칠순 노인을 따라 누각으로 올라갔다. 두루마리 책 권축장(卷軸裝)과 차곡차곡 접어 포개놓은 절첩장(折帖裝), 호접장(蝴蝶裝)으로 된 책들이 시렁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마루 아래 항아리에 담긴 책들도 보관상태가 완벽했다. 게다가 목록도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감동이었다. 더 큰 감동은 거기서 스승이 확인하고 싶어 했던 책들을 찾았다는 거였다. 절첩장으로 된 『서청미시소경(序聽迷詩所經)』 『경교삼위몽도찬(景敎三威蒙度讚)』이 그것들이었다. 모두 한 부씩이었는데 거의 펼쳐본 적이 없는 듯 아주 새것이었다. 문헌을 중시해온 동방의 전통이 이 혼란스러운 전란 통에도 살아있었다. 눈물겨웠다. 책을 사랑하고 그 속에 담긴 진리에 신명을 걸어온 스승과 나는 직제학 노인께 큰절을 올렸다.

 “이제야 알겠다. 마리아나 이수는 당나라 태종 때 아시아에 전파된 대진국 경교(景敎)의 용어들이다.”

 “경교요?”

 “그들은 하느님을 미시아(彌施訶) 등으로 부르지. 대식국에서 유래하여 대진국에서 다듬어진 종교가 인도에서 유래하여 서역에서 다듬어진 불교와 당나라 장안에서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거다. 서쪽에서 온 이 종교를 빛의 종교, 하늘의 종교, 경교라고 부르지. 오래전 아시아에 두루 유행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아 참, 『신당서』나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도 경교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을 게다. 통감 권248이던가. 당나라 무종황제가 외래 종교를 배척하여 비구와 비구니, 대진승(大秦僧: 경교 승려), 목호승(穆胡僧: 마호메트교 승려), 현승(<7946>僧: 조로아스터교 승려) 등을 모두 환속케 했다. 찾아보아라.”

 수기 스승은 두루마리 책을 읽어 내렸다. 스승의 비상한 기억력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나는 통감을 펼쳤다. 과연 그런 기록이 뚜렷했다.

 “그럼 김승이라는 작자가 경교도라는 말이로군요.”

 “글쎄다.”

 직제학 노인에게 경교 문헌들을 빌려 안화사 요사채로 내려왔다. 머리를 맞댄 우리는 산사에 새벽이 올 때까지 그 책을 붙들고 있었다. 생소한 용어들로 인해 뜻이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흥미로웠다. 예전에 듣도 보도 못한 이색적인 이야기들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습격이다! 몽골 놈들의 습격이다!”

 잠시 눈을 붙이는데 고함소리가 울렸다. 불을 싸지른 듯 퉁탕거리던 문밖이 붉게 물들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갑옷 차림의 기마병들이 절집을 휘젓고 다니며 분탕질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불타는 절집에 비명소리가 울렸다. 여기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 나는 스승의 팔을 부축하고 뒷산 길로 냅다 뛰었다. 기마병의 예리한 칼날이 등줄기를 내갈길 것만 같았다. 아까 낮에 갔었던 동굴서고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곳으로 길을 잡지는 않았다. 아무리 황급해도 그곳만큼은 들통나게 할 수 없었다. 반대편으로 가기로 했다.

 “추! 추! 바이르태!”

 소름끼치는 단음절 몽골 말이 귓전에 울렸다. 돌아보니 추격해 오던 몽골 기마병 하나가 초승달 같은 언월도를 치켜들고 있었다. 바로 스승의 머리 위에서. 아찔했다. 나는 스승을 끌어안고 숲으로 들입다 몸을 날렸다. 그 찰나 말 울음소리가 허공을 뒤흔들었다. 우리가 뛰어든 숲 가로 말이 고꾸라졌다. 그 사품에 몽골 병사가 내동댕이쳐졌다. 고려인 옷차림을 한 장정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칼로 목을 내리쳤다.

 “어서 이 말에 타시오!”

 스승과 나는 장정들에게 이끌려 두 필의 말에 나눠 탔다. 나를 뒤에 태운 장정의 등에서 끈적끈적한 땀내와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글=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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