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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들의 불공정 특권 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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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파리 특파원

출장이 잦은 직업적 특성 때문에 국내외 공항에 자주 간다. 한국 승객들이 항공기에 싣는 수화물의 무게 때문에 애를 먹는 장면을 종종 접한다. 정해진 중량에서 몇 kg만 넘어도 많게는 수십만원을 별도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보통의 한국인이다.

 반면 특권을 누리는 공무원이 있다. 대사(공식 직함은 대한민국 대통령 특명 전권 대사), 그들이다. 대부분 비즈니스석 표로 1등석에 탄다. 물론 국적기(대한항공 또는 아시아나항공)에 한해서다. 정부에서 정한 기준은 1등석이 아니라 비즈니스석이다. 항공사에서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준다. 모든 대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다. 어차피 빈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있다. 기업인을 포함한 민간인들은 표 값을 다 치르고 탄다. 통상 이코노미석 요금의 네댓 배다.

 많이 양보해서 대사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사의 부인들도 국적기가 다니는 곳으로는 대부분 1등석에 탑승한다. 물론 1등석 표 값을 내지는 않는다. 남편인 대사와 함께 오가는 경우가 아니라 집안일 때문에 항공편을 이용할 때도 그렇다.

 일부 대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이동하는 일행들에게까지도 1등석을 요구한다. 항공사는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취항하는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밉보여서 좋을 것 없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공정사회’가 화두 중 하나다. 하지만 국민들은 시큰둥하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부 공무원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국민들은 이를 안다. 그래서 믿음을 주지 못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해 미국을 방문할 때 국적기인 브리티시 항공의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다. 한때 대영제국이라 불렸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국가의 수반이 1등석에 타지 않은 것이다. 세금으로 출장 비용을 내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1인당 국민소득(GNI)이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캐머런 총리는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영국 왕족의 후손이자 부호의 아들로서 1등석을 자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총리가 된 뒤로는 스스로 예산 절약과 공정사회 실현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자국 국민들에게 ‘쿨’한 리더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요즘 장거리 노선 비즈니스석은 1등석 못지않게 편하다. 그런데도 대사 등 고위 공무원들은 1등석을 고집한다. 국제적 기준에 비춰 보면 오히려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떤 대사의 부인이 그런 특권을 누렸느냐고 정부에서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적기가 취항하는 지역 대사 부인들이 어떤 좌석으로 한국을 오갔는지를 파악해 보면 된다. 국회는 국정감사 때 외교부에 자료를 요청할 만하다.

 공무원의 특권 의식, 작은 것에서부터 버려야 한다. 요즘 한국에서 잇따라 불거진 고위 공무원 비리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 데서 출발했을 수 있다. 공정사회는 구호가 아니라 작은 실천을 통해 실현될 일이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