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감독 오시마 나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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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동반하는 수식어들은 급진, 혁신, 센세이션 등 과격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 애호가들에게도 이미 그 명성이 알려져 있는 〈감각의 제국〉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그러한 수식어들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할 것이다. 시대보다 너무 많이 앞선 탓일까? 언제나 새로운 시도로서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또 그의 일부 작품들은 일본 내에서의 상영이 금지되어 먼 타국으로 스크린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교토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연극과 학생운동에 열심이던 그는 1954년 쇼치쿠 영화사에 입사한다. 특별히 영화감독으로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기보다는 좌익학생운동 출신자들을 기피하던 당시의 기업풍토가 오시마를 영화계로 인도한 것이다. 조감독 생활 5년 만에 이례적으로 발탁되어, 비둘기를 파는 소년을 충격적으로 묘사한 〈사랑과 희망의 거리(愛と希望の街)〉(59)로 감독데뷔 한다. 현대사회의 밑바탕에 숨겨져 있는 계급단절에 대한 절망을 그리는 이 작품은 오시마 감독의 탄식이 스크린 곳곳에서 신음처럼 들려오는 못진 작품이지만 흥행에는 참패하고 만다. 그러나 다음 작품인 〈청춘잔혹이야기(靑春殘酷物語)〉는 현대사회의 비인간성과 퇴폐의 깊이가 선명하게 노출되는 영화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어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작품 속에 투영시키며 쇼치쿠 누벨바그의 불을 당긴다. 그는 네 번째 작품 〈일본의 밤과 안개(日本の夜と霧)〉로 쇼치쿠와의 인연을 끊게 되는데, 우익 소년의 사회당 의원 살해사건을 빌미로 쇼치쿠가 극장개봉 4일만에 상영을 중단시킨 데 반발한 것이다.

그 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독립 프로덕션 '창조사'를 만들어 더욱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나간다. 일본의 천황제와 그 지배구조 그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과 무책임함을 집요하게 추적한 〈사육〉, 토오리마(순식간에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악마 또는 악인)에게 당한 여자의 삶을 통해 '범죄는 혁명이다'라는 논리를 펼치며 진짜 혁명가는 대중을 범하는 악마라는 정의를 내린 〈백주의 악마〉, 사형수 조선인 소년을 주인공으로 범죄, 국가, 민족의 개념을 뒤 짚어가는 〈교사형〉, 부권상실과 반국가 사상을 융합 시킨 〈소년〉이나 〈의식〉등을 통해 사회에 커다란 테마를 내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빛난 재능도 막다른 길목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마침 그때 프랑스의 명제작자 아나토르 도만은 그에게 영화연출을 요청했고, 그는 4년의 침묵을 깨고 〈사랑의 코리다〉로 컴백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감각의 제국'이란 타이틀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일본 연애사 중 가장 센세이셔널한 실화 아베사다(阿部定) 사건을 명쾌하고도 탐미적 영상으로 표현했다. 음부의 노출, 성적접촉 등으로 외설시비에 휘말리는 한편, 제 30회 깐느 영화제에서는 감독주간 오프닝 작품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며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사랑의 코리다〉는 프랑스 영화로 전 세계에 개봉되었으므로 일본에서는 역수입된 셈인데 대폭적으로 수정이 가해졌고 또한 오시마 감독과 시나리오 책을 출판했던 출판사 사장이 외설죄로 기소 당했다. '사랑의 코리다 재판'은 장장 7년에 걸쳐 계속되었고, 외설성의 판단기준과 사회통념의 변화에 따라 1982년 무죄선고를 받았다.

이후 〈사랑의 코리다〉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오시마 감독은 영국의 제작자 제레미 토마스와 손잡고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를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자바에 있었던 일본 포로 수용소를 무대로, 영웅적 영국 포로와 아직 무사도 정신을 지니고 있는 수용소 소장들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동성 연애적 우정을 아름답고도 슬프게 그리고 있다. 여러가지 쇼킹한 소재를 들고나온 오시마 감독은 86년 미녀(샤로트 램플링)와 침팬치의 사랑을 다룬 〈내 사랑 맥스〉를 발표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후 10여년동안 TV 오락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정처 없는 휴식기를 가지는 듯 보이던 오시마 감독은 올해 초 〈고하토〉라는 시대극으로 13년 만에 멋지게 컴백했다. 기타노 다케시, 최양일, 아사노 타다노부 등 오시마가 아니면 불가능할 정도의 화려한 스텝과 출연진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제작발표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 최신작은 평론계의 극찬은 받았지만, 일반관객으로부터의 호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마 그의 다른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평생을 영화적 스캔들과 함께한 그는 아마도 신세계를 쫓는 모험가 혹은 탐험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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