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엿보기] 화면 자막 홍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즘 TV 연예 오락물을 보면 마치 만화책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화면 치장이 요란하다.

누가 진행하다 '열 받았다'면 뽀글뽀글 머리에서 연기나는 장면을 넣고 '열 받았음'이라는 자막을 넣어 장난치기 일쑤다. 화면 밑에 해설 자막을 넣는 것은 시사 다큐멘터리에서나 통하는 '고전적'인 기법. 연예오락물에서는 상하좌우를 가릴 것 없이 자막이 넘쳐난다.

이를 보는 시청자의 반응은 대체로 엇갈린다. "난삽하고 점잖치 못하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반응도 많다. 연예오락프로의 주 시청자 층인 젊은층에서는 후자 쪽에 훨씬 무게를 두는 편이다.

이처럼 최근 범람하는 TV자막방송의 유형과 왜 PD들이 이에 집착하는 지 등을 학문적으로 고찰한 논문이 나왔다.

KBS TV2국 홍경수PD(〈열린음악회〉연출)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사논문으로 제출한 '시청율 압박이 프로듀서의 TV자막에 대한 인식과 사용패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다.

〈서세원쇼〉 등 KBS 오락프로의 PD 6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TV 자막방송은 방송사의 시청률 압박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시청자를 위한 배려는 다음의 문제란 이야기.

5점 만점을 기준으로 자막사용과 시청률과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등 오락프로의 PD들은 3.42를 기록했고,〈TV는 사랑을 싣고〉 등 교양이 가미된 프로의 PD들은 3.17에 그쳤다. 또한 오락프로의 PD들은 자막이 정보제공이나 장애인용 자막방송에서의 '부가기능'보다는 재미와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4.43)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당 평균 자막횟수에서도 차이가 났다. 오락프로가 3백73회,글자수는 1천1백96자에 이르렀지만 교양물에서는 각각 64회와 8백56자로 오락물의 20% 안팎이었다.

홍PD는 "논문을 선배PD들에게 보여줬더니 '옛날에는 화면 망친다'며 자막을 금기시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제는 TV의 기능이 다채로워지면서 자막이 출연자 못지않은 중요한 제작방식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자막을 세련되게 처리하는 기법은 계속 연구해야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