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최도석 사장 "이젠 은행장이 먼저 찾아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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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97년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자기자본은 '제로'(0)였습니다. 자기자본이 제로이니 삼성전자는 망한 회사나 다름없었죠." 지난해 매출 57조원, 순이익 10조원을 넘겼던 삼성전자의 안방 살림을 맡고 있는 최도석 경영지원총괄 사장. 좀처럼 외부 강연에 나서지 않는 그가 12일 성균관대의 학부 정규 수업인 '삼성 CEO 강좌'의 강사로 나서 어려웠던 외환위기 시절을 회고했다.

최 사장은 "당시 삼성전자의 자기자본은 5조8000억원이었는데, 환율 급등에 따른 환율 조정 3조2000억원과 투자자산 중 부실 부문을 감안하니 실질적인 자기자본은 제로였다"고 말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자금을 구하러 다니다 은행에서 냉대받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최 사장은 "친했던 은행장들조차 만나주질 않아 아침부터 은행 앞에 쪼그리고 있다가 출근하는 은행장을 따라들어가 통사정했는데도 번번이 거절당했다"면서 "울면서 은행을 나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그때 다시는 은행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면서 "지금은 은행장들이 바뀌면 가장 먼저 내 방을 찾아오곤 한다"며 달라진 회사 위상을 전했다. 올해 1분기 말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은 5조8000억원이다.

최 사장은 '우리나라 부모의 자식 사랑'을 해외 채권단의 설득 논리로 이용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98년 1월 기업설명회를 하러 미국으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재무 자료로는 채권단과 주주를 도저히 설득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비록 자신은 굶더라도 자식 교육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한국 부모의 자식사랑과 교육열이 우리의 경쟁력'이라는 논리로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끊임없는 업무 프로세스 혁신 및 핵심인력 양성 등을 추진한 끝에 지금은 국가 세수의 2.7%를 담당하고 전세계 브랜드 가치 21위에 오르는 실적을 달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또 "가진 자가 존경받고, 이들의 욕망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기업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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