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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관이다 … 노무현 땐 ‘정치적 동지’ MB 땐 ‘대통령 보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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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전 8시 청와대 국무회의. 오전 10시~오후 1시30분 청와대 국가브랜드위원회 1차 보고대회. 오후 2시 G20 대통령 보고. 오후 4시30분 한나라당과의 추경 당정협의…. 경제사령탑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2009년 3월 17일 하루 일정이다. 유독 이날만 바빴던 건 아니다. 그는 당시 하루에 네댓 건의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이명박(MB)정부 장관, 참 바쁘다. 우선 회의가 많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윤 장관은 2년4개월 동안 회의를 주재하거나 참석한 횟수가 327회에 달한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103회, 윤 장관이 주재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옛 위기관리대책회의)에 75회,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민경제대책회의(옛 비상경제대책회의)에 80회 참석했다. 국무회의는 화요일, 경제장관들이 현안을 조정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는 수요일, 국민경제대책회의는 목요일에 통상 열린다. 경제장관들은 최소한 매주 세 차례 대면회의를 하는 셈이다. 윤 장관은 현안이 터질 때마다 총리 주재의 국가정책조정회의에 36회 참석했고, 대외경제장관회의(28회)와 FTA 국내대책회의(5회)도 직접 주재했다. 정책에 미치는 국회의 힘이 세지면서 비공식 당정협의나 국회 본회의·상임위 출석도 많아졌다. 오죽하면 정부 고위관료 입에서 “요즘 장관은 3D(어렵고 위험하며 더럽다)”라는 말이 나올까.

 MB정부 장관은 왜 바쁠까. 기획재정부의 어느 국장은 “기업인 출신 MB정부의 ‘일하는 정부’ 슬로건이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호평을 내놓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챙기는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스타일 때문이라는 비판도 많다. 대통령이 ‘만기친람’하다 보면 장관에게 필요한 만큼 힘을 실어주지 않게 되기 쉽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중앙일보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성공적 국정 운영을 위한 장관 직무가이드』(일명 ‘장관 매뉴얼’)를 비교·분석했다. 장관 직무가이드가 처음 만들어진 건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8년 1월이었다. 당시 중앙인사위원회가 정책보고서 여럿을 참고해 발간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 가이드북에 첨삭을 가해 행정안전부 주도로 2010년 6월 MB정권 장관 매뉴얼을 새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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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정부의 장관 매뉴얼은 차이가 뚜렷하다. 각 정부 특유의 국정철학과 ‘장관론’이 담겼다.

 “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 운영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자리”(노무현 정부의 장관 매뉴얼)

 “ 대통령을 보좌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자리”(이명박 정부의 장관 매뉴얼)

 노무현 정부는 장관을 관료보다 정치인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을 운용한다는 표현도 보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선 장관의 정치적 속성에 무게를 덜 두는 대신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강조했다. MB정부도 장관의 정치적 역할을 여전히 중요하게 봤지만 “장관에게서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은 절대적인 비중”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표현이 “정치인으로서의 역할도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정도로 순화됐다. “성공한 장관이 되기 위해서는 장관은 정치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며, 그것은 곧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고, 그 가치의 적극적 실현을 위하여 대통령과 ‘한 배’를 탄 것”이라는 노 정부 때 매뉴얼의 언급도 사라졌다.

 매뉴얼의 차이가 실제 장관직 임명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경호실장’ 소리를 듣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장관 임명 10개월 전에 “입각을 준비하라”고 얘기했다. 반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임명 발표 한 시간 전에야 청와대의 연락을 받았다. ‘정치 동지’와 ‘보좌역’의 차이가 엿보인다.

 시민단체와의 관계 설정도 좀 달라졌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시민단체가 장관의 정책 추진을 포함한 국정 운영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했지만 현 정부 들어선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참여와 정보 공유를 통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로 바뀌었다.  

서경호·조민근·임미진 기자

◆장관 직무가이드=가장 명예로우면서도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장관직 수행을 돕기 위해 정부가 역대 장관들의 경험이나 조언, 학계 자료,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우수한 평가를 받아온 장관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정리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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