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 기자의 ‘금시초연’ ⑪ 쇤베르크가 편곡한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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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 주인공은 여행을 떠난다. ‘사랑하는 그녀의 혼례날/이 날은 내 슬픔의 날/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우네.’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스물셋에 이 시를 쓰고 곡을 붙였다. 독일 카셀에서 지휘자로 일하던 시절, 소프라노 요한나 리히터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한 말러의 상처가 들어있다. 혼례날이 지나고, 젊은이는 홀로 아침 들판을 거닌다. 눈부신 자연에서 얻은 약간의 희망은 곧 사라진다. 이어 보리수 아래 검은 관에서의 안식을 노래한다.

 이 과정을 만든 연가곡집이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다. 말러의 첫 연가곡집이다. 바리톤 한 명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썼다가, 피아노를 오케스트라로 바꿨다.

 말러가 아꼈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1874~1951·사진)는 1920년 이 작품을 다시 한번 매만졌다. 쇤베르크는 브람스의 현악4중주를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바꾸는 등 편곡에 능했다. 그는 작은 실내악 앙상블을 이용했다. 말러 특유의 폭발하는 듯한 오케스트라 음향을 대신할 연주자는 열 명이면 됐다. 바이올린 둘, 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의 아담한 현악기 팀과, 플루트·클라리넷의 간소한 관악기 팀을 우선 배치했다. 다양한 효과를 보여줄 타악기와 피아노 한 대도 더했다.

 가장 특이한 악기는 하모니움. 풍금과 비슷한 건반 악기로, 쇤베르크도 이 작품 외의 곡에서는 거의 쓰지 않았다. 공기를 주입해 소리를 내는 만큼, 호른·트럼펫 등 원곡엔 있었지만 빠진 금관악기들의 효과를 내준다.

 쇤베르크는 ‘미니 사이즈’ 말러를 시도했다. 말러의 ‘전매특허’인 거대한 오케스트라 없이도 그의 작품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달 이 작품을 국내 초연하는 팀은 금호아트홀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 리더인 피아니스트 김대진씨는 “쇤베르크가 오케스트라를 완벽히 다룰 줄 알았던 만큼, 그 안의 악기를 대부분 덜어내고도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고 평했다. 김씨는 외국에서 연주회를 보던 중 이 곡을 발견하고 국내 초연을 결심했다. 성악 파트는 바리톤 최현수씨가 맡는다. 연주 시간 약 18분. 6월 2일 오후 8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02-6303-7700.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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