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중경 장관의 어이없는 전관예우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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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퇴직 관료가 산하 공기업 임원으로 가는 건 “전관예우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경부 출신이 공기업 한두 곳에 대표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관(官)에서 민(民)으로 가는 건 전관예우지만 관에서 관으로 가는 건 다르다”는 것이다. 최 장관의 말이 원론적으로는 틀린 게 아니다. 공기업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을 대신해 정부가 공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낙하산 인사를 한 경우에도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관료가 공기업 사장을 맡아 탁월한 경영실적을 보여준 사례가 없지 않다. 중요한 건 낙하산 여부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점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앞뒤가 뒤바뀌어 있어 이를 듣는 국민의 심사를 편치 않게 한다. 무엇보다 그의 사고방식이 크게 우려된다. 최 장관의 말은 공기업 인사를 정부 부처 인사의 하위 개념 정도로 보고 있다. 정부 부처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거나 물러나는 공직자에게 보상해주는 차원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판단으로 인사를 한다면 전문성과 능력을 무시하게 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 시절의 직위에 걸맞은 처우와 비슷한 곳이라면 어느 곳에든 앉히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공무원들의 생각도 최 장관과 비슷한 것도 걱정스럽다. 퇴임 후 산하기관으로 내려가는 걸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을 퇴직용 선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공기업 경영혁신은 뒷전일 게 분명하다.

 저축은행에 대한 국민 여론이 매우 격앙돼 있다. 더구나 금융감독 당국의 전관예우가 주요 원인이라고 밝혀진 마당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전관예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 장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스럽다. 더구나 공기업 인사전쟁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낙하산 우려가 팽배해 있다. 자리를 둘러싸고 줄서기 경쟁이 치열하다는 비난도 속출하고 있다. 최 장관은 ‘경제관료집단의 선배’이기에 앞서 일국의 경제장관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