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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는 법, 화 표현하는 법… 한글·구구단처럼 가르쳐야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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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의 반을 머물며 타협과 배려, 자기주장을 배우는 장이에요. 학교에서 사회성 훈련을 잘 받은 아이는 혹 공부를 못한다 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지요.”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46·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및 학습발달연구소 원장·사진) 박사가 신간 『엄마표 학교생활 처방전』(중앙북스)을 펴냈다. 부모가 어떻게 아이의 학교 생활 적응을 도울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오 박사는 “어린이·청소년들을 상담해보니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걱정과 두려움·화 등의 상당 부분이 학교생활과 연관돼 있더라”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회성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부모가 주의 깊게 관찰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 지켜보는 부모도 괴롭다

“사람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한 갈등은 불가피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외톨이나 ‘왕따’가 됐다 하더라도, 그 상황을 피하려고만 해선 안 된다. 학교를 떠난다 해도 또 다른 누군가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풀 힘이 생기도록 아이에게 사회성 교육을 시켜야 한다. 한글이나 구구단을 가르칠 때처럼 다양한 교육법을 시도해보라. 물론, 아이가 입은 상처가 너무 심각하다면 그때는 ‘다 그만둬’를 해야 한다. 학교보다 아이가 훨씬 중요한 건 분명하니 말이다.”

-사회성을 키울 방법이 있나 “공부에 쏟아붓는 노력의 반만 기울여도 사회성은 반드시 좋아진다고 장담한다. 아이와 성적 얘기, 숙제 얘기만 하지 말고 인간관계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눠라. 친절하되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 화를 폭발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는 법 등을 아이가 저절로 깨치리라 기대하지 말고 부모가 예문을 들어 알려주라는 것이다. 감정 조절이 서투른 아이와는 ‘감정 엘리베이터’ 게임을 해보는 것도 좋다. 화가 난 정도를 1에서 10까지 정하고 아이의 현재 감정 상태와 표현해야 할 감정 수위가 맞는지 숫자로 조정을 해준다. ‘지금은 5만큼 화낼 일인데, 너는 0이나 1 정도로만 표현했네’라는 식이다. 층별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가르쳐줘도 좋다. 1층은 ‘짜증 나’, 2층은 ‘기분이 나쁘네’, 5층은 ‘기가 막혀, 어쩜 그럴 수가 있니’ 등이다.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상황에 맞게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자란다.”

-집단 따돌림 문제가 심각한데 “사람과 사람 사이 힘의 균형이 깨질 때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긴다. 특히 청소년기 아이들에겐 악동 기질이 있다. 약한 존재를 집단적으로 공격하려는 성향이다. 남이 공격을 해오면 그 수준에 맞도록 대응을 해야 ‘밥’이 안 된다. 상대가 ‘꺼져’라고 시비를 걸 때는 ‘시끄러’ 정도로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첫 대응이 잘못돼 반에서 ‘찌질이’ 대접을 받는다 하더라도 다 끝난 일은 아니다. 관계란 건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만 잘 대처해도 자신의 위치가 바뀔 수 있다. 반 아이들이 부당한 요구를 할 때 ‘야, 눈 있으면 봐. 할 수 있겠나’라고 대응해 곧바로 피해자 처지에서 벗어난 사례도 있다. 아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집에서 부모와 상황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대처법을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단계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교사에게 상처받을 때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아이도 부당하다는 것을 안다. 그때 ‘네가 혼날 만하니까 혼났겠지’ ‘너 잘되라고 선생님이 그러신 거다’라고 말하면 아이가 이해하겠는가. 문제를 아이 탓으로 몰지 말고 ‘네 마음이 아팠겠다’ ‘엄마도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식으로 솔직히 반응하는 게 낫다. 또 선생님이 아이에게 매정하게 대해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라. ‘모든 사람이 널 좋아할 순 없어. 하지만, 널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꼭 기억해’란 조언을 통해 아이의 자존감은 살아난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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