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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가수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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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주철환
jTBC 제작본부장

가수도 아닌 주제에 세 번째 단독음악회를 여는 나에게 누군가 정색하며 묻는다. “제 정신이냐?” 답은 간단하다. “제 정신이다.” 창작된 노래들은 엄밀히 말하면 세상과 나의 합작품이다. 세상이 나를 건들고 지나간 상처가 아물면서 그것이 노래가 된 것이다. 마치 조개 속의 진주처럼. 노래를 부르는 이유도 비교적 명료하다. 겸손하게 밝히자면 노래를 부르는 건 사라진 친구를 부르는 거다. 외로워서 부르고 그리워서 부른다. 그들은 노래와 함께 슬며시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철없던 나를 조용히 껴안는다.

 어떻게 PD가 됐냐고 물었을 때 초승달 덕분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부분적으론 사실이다. 자기소개서에 취미를 작곡이라고 썼더니 면접관 중 한 분이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다. 그때 부른 노래 제목이 ‘초승달’이었다. “달이 초승달인 것을 나는 근심하지 않아요. 보다 완전한 달은 언제나 구름 속에 숨겨져 있어요.” 훈훈한 박수는 합격의 전주곡이었다.

 음악회는 세 글자의 연합체다. 소리(音)가 즐거워(樂) 사람이 모이는(會) 곳. 세상에 소리가 좀 많은가. 그 소리들 중에 들을 만한 것들을 모아 사람들을 끌어당기니 얼마나 좋은가. 음악은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준다. 다르게 살아온 이들이 같은 소리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인 곳. 음악이 맺어준 핏줄로 인해 드라마처럼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곳. 음악회는 그들의 또 다른 집이다.

 좋은 음악은 영혼의 발암물질, 이를테면 불안, 분노 따위를 추방해 준다. 희망과 자신감 같은 항암물질을 불러들인다.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쇼생크 탈출’ 포스터엔 이런 글씨가 써있었다. “공포는 너를 감옥에 가두지만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 can set you free)

 주제가 드러난 장면을 영화 팬들은 기억의 창고에 저장한다. 주인공인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 독방에 갇힐 각오로 동료 죄수들에게 틀어준 문제의 음악.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 ‘포근한 저녁바람’(일명 ‘편지의 이중창’)이었다. 그 ‘바람’은 죄수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환기시킨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음악 가까이로 모여든다. 앤디는 그 죗값(?)으로 독방에 갇혔다가 돌아온 후 동료 죄수에게 고백한다. “내게서 모든 걸 빼앗아가도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은 빼앗아가지 못한다. 그것이 음악이다.”

 나도 그랬다. 비록 악보를 그리진 못해도 음악은 늘 내 가슴에서 물처럼 샘솟았다. 그 물이 나를 적셔주었고 때마다 씻겨주었다. 그 물을 모아 병 속에 넣은 게 음반이고 그 물을 꺼내어 잔디에 뿌리는 게 음악회인 셈이다.

 다시 쇼생크로 가보자. 앤디가 친구 레드(모건 프리먼)에게 쓴 편지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다. “희망은 좋은 것, 최고의 것,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누가 예언했듯이 ‘변하지 않는 것은 별이 된다.’ 좋은 음악도 마찬가지다.

주철환 jTBC 제작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