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 점의 의혹도 남겨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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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은빛 비행기가 지나간 상공에서 죽음의 비가 내린다. 베트남전쟁 당시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정글로 사라지는 베트콩을 상대하던 미군은 베트콩의 은신처와 보급 루트가 되는 정글을 없애기 위해 고엽제를 썼다. 베트남 국토의 15%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에 9만t에 달하는 고엽제를 살포했다. 한국군 주둔 지역에도 고엽제 비가 내렸다. 병사들은 고엽제가 모기를 쫓을 수 있다고 생각해 고엽제 비가 내리면 방역차에서 살포되는 하얀 살충제를 뒤쫓는 아이들처럼 온몸에 맞기까지 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귀환한 적지 않은 병사들이 원인 모를 병마에 시달린다. 각종 암으로부터 심혈관 질환, 파킨슨병, 피부병에 이르는 수많은 질병에 시달리게 되고, 특히 병사들의 아이들도 기형 등 각종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고엽제 때문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베트남 참전 전역 미군들이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978년 이후의 일이다. 고엽제 제조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화학반응으로 생성된 다이옥신이 화근이었다. 살포된 고엽제 중에는 170kg에 달하는 다이옥신이 함유되었으며, 그 결과는 참혹했다. 수백만 명의 베트남 국민과 전쟁에 참전한 나라들의 병사들이 여전히 심각한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파월 한국군의 고엽제 피해자도 3만5000명에 달한다.

 한반도에서도 고엽제가 사용되었다. 1968년 북한 특공대는 중무장된 휴전선을 뚫고 유유히 남하해 청와대를 기습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사분계선 일대에 북한 게릴라 침투를 막기 위해 100t에 달하는 고엽제가 살포되기도 했다. 무지의 소치였다. 1978년 경북 칠곡군의 미군기지에 드럼통 수백 개에 달하는 대량의 고엽제를 묻었다는 전역 미군의 충격적인 증언이 없었다면 그냥 묻힐 뻔했다.

걸릴 확률이 천문학적으로 낮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겪었던 우리는 고엽제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도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고엽제 매립 증언이 나온 지 3일 만에 미국은 한국과 공동조사에 합의했고, 정부는 물론 환경전문가,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에게 기지를 공개하고 조사에 적극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거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던 주한미군의 달라진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한 점 의혹이 없도록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자세가 주한미군이나 정부에 요구된다. 조금이라도 숨기려는 인상을 주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발표할 경우 그 파장은 쇠고기 파동을 훨씬 넘을 수 있다. 주한미군 측은 1979~80년 드럼통들을 파내 주변 흙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잘못 처리된 부분이 있더라도 사실 그대로 알리고 문제점이 있다면 철저히 해결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염된 곳이 있다면 환경복구를 위한 철저한 조치가 뒤따라야 하며, 피해자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보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사실규명과 소통, 그리고 성실한 피해보상만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한·미관계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차제에 미군기지 환경문제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관리체제를 제도화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이옥신은 인류가 만든 최악의 환경호르몬이지만 고엽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생활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쓰레기를 태우는 과정이나 화학생산품에서도 많은 다이옥신이 생성된다. 우리는 이미 그 위험성을 잘 알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이번 사태로 지나치게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고, 철저하고 투명성 있는 진상조사가 이루어지는 게 급선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