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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은 상처입었는데 어른들끼리 사과하고 끝?’ 대낮 술판 군포시청 비난 폭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학부모가 블로그에 글과 함께 올린 사진.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수업이 진행중인 토요일(21일) 오전 경기도 군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군포시청 직원 600여 명이 체육대회를 한다는 명목으로 고기를 굽고 술판을 벌인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어른들의 '이상한' 모습을 목격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하에 옆길로 이동해 하교해야 했다. 어린이날이 불과 보름 정도 지난 토요일에 벌이진 일이었다.
군포시청은 다음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고 군포시장은 해당 학교장에게 전화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였을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군포시청이 직접 사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이들 데리러 와보니 고기 냄새에 담배 연기 진동"=21일 김윤주(민주당) 시장을 포함한 군포시청 직원 600여 명은 오전에 인근 수리산을 등반하고 오후에 D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비가 온다는 기상 예보로 일찍 하산해 11시 30분쯤 운동장에 모였다. 그리곤 삼겹살을 굽고 술을 마시며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데리러 왔다 깜짝 놀라 학교에 항의했다. 학교 측도 시청 관계자들에게 항의해봤지만 갑작스레 벌어진 ‘판’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한 학부모는 21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학부모는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갔더니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직원들이 술을 먹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교실 창에선 학생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트위터에 "공무원들 단합대회로 인해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 받았다"며 "이를 허락한 학교의 대응도 어이가 없다"고 항의했다.

군포시청은 22일 군포시 홈페이지 게시판에 "학생들의 수업이 종료되기 전에 교내에서 식사를 한 점에 대해 사과 드린다.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학생 앞에서 식사를 해서 미안하다는 뜻이다. 술판을 벌이는 등의 행동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다.

해당 초등학교 역시 "학습 분위기 조성에 소홀했다"는 학부모들의 비판에 23일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노력은 알겠지만 군포시청에서도 직접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고기와 술, 행사의 기본?'=군포시청 측은 학교에 21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운동장을 사용하겠다고 지난 달 공문을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초등학교 이모 교감은 "공문에 오전 11시 30분이라고 적혀있는 것은 맞다. 이는 등산을 시작하는 시간이었다"며 "하산 후 오후 1시부터 운동장을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 후 승인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오전 11시 30분 무렵 순식간에 삼겹살 파티와 술판이 벌어지자 크게 당황했다. 이모 교감은 "식사를 한다기에 도시락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군포시청 관계자는 "고기와 술은 행사 때 보통 많이 선택하는 메뉴라 (학교 측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더욱이 어린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시간이란 점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업 중 학교서 대낮 술판…학습권 침해"=해당학교 교감은 "교육청 조례 6조 5항에는 학교 시설 내에서 음식 취사 행위 및 음주,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점을 미리 군포시에 공지했다고 한다.

경기도 군포·의왕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조례상 학교 교육활동 시간 외에는 운동장 개방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이번 일은 수업 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엄연한 학습권 침해"라며 "학교와 시청 모두 각자의 잘못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청 역시 초등학교의 학습권을 지켜줬어야 하기에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는 지적이다.

네티즌들은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서 술판 벌이면 단속하지 말라. 어른들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등의 글을 올리고 있다. "왜 하필 초등학교를 빌렸는가. 만만한 게 '초딩'이냐"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군포시청 홈페이지에도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특히 사과문에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는 비난이 많다. 사과문이 홈페이지를 찾은 이들이 쉽게 볼 수 있는 팝업창 형태가 아니라 '군포시에 바란다'는 게시판 중간에 삽입돼 있기 때문이다. '군포시에 바란다'게시판에 글을 올린 채모 씨는 "사과문 어디 있나. 알아서 찾아보라는 뜻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남모씨는 "사과문은 단순히 중식만 먹었다는 내용만 있을 뿐, 고기 굽고 술 마시고 담배 피웠다는 내용은 없다"고 적었다. 안모씨는 "실수든 과오든 잘못을 했으면 반성과 사과가 뒤따라야 하는데 사과문이 그에 합당한 반성의 글이라 판단되지 않아 화가 난다"고 적었다.

한편 군포시청 관계자는 25일 "시장이 학부모운영위원과 교장·교감 선생님을 만나 사과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진희·유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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