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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페라리 얹혀라” … 박병엽 이색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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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큰 사진은 실물 크기의 베가 레이서. 작은 사진은 경품으로 내건 페라리다.


“페라리가 좋아, 람보르기니가 좋아?”

 팬택계열 박병엽(49·사진) 부회장의 이 말 한마디에 서울 상암동 본사 회의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2주 전, 스마트폰 ‘베가 레이서’ 출시를 앞두고 모든 임원이 모여 난상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베가’라는 브랜드로 세 번째 내는 이 스마트폰의 빠른 정보처리 속도를 부각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간부들을 보며 박 부회장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속도 하면 페라리 아냐. 페라리로 경품 이벤트를 하는 거야.”

 스포츠카 페라리를 앞세워 베가 레이서가 ‘스마트폰의 페라리’임을 각인시키자는 뜻이었다. 24일 단 하루 온라인 응모를 통해 증정할 빨간색 페라리 캘리포니아의 가격은 약 4억원에 이른다. 박 부회장의 통 큰 승부사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지난해 “애플을 반드시 따라잡겠다”고 공언했던 박 부회장이 이번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마트폰’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19일 베가 레이서를 출시하면서다. 세계 최초로 퀄컴의 1.5기가헤르츠(G㎐) 듀얼 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지난달 출시한 갤럭시S2(1.2G㎐ 듀얼코어)보다 빠르다. 베가 레이서의 직전 모델인 베가S(1.2G㎐ 싱글코어)보다도 2~2.5배 빨라졌다. 큰 화면을 감안해 보안에도 신경 썼다. 반사 방지 코팅이 적용된 ‘시크릿 뷰 액정표시장치(LCD)’를 써, 옆에서는 화면이 잘 안 보인다.


 애초 계획한 베가 레이서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사양은 1.2G㎐ 듀얼 코어였다. AP는 PC의 중앙처리장치(CPU)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출시 4개월을 앞두고 날벼락이 떨어졌다. 삼성전자 갤럭시 S2의 사양이 이와 같다는 소식이었다. 고심 끝에 AP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퀄컴에 1.5G㎐ 듀얼코어용 칩을 요청했다. 처음에 난색을 보이던 퀄컴도 “가장 빠른 스마트폰을 만들겠다”며 열성적으로 매달리는 팬택의 의지에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퀄컴에서 제공 받은 칩을 안드로이드2.3(진저브레드) 운영체제에 최적화시키기 위한 연구원들의 ‘날밤 까기(밤샘)’ 행군이 시작됐다. 이들을 위해 박 부회장은 수시로 피자와 치킨을 샀다. 팬택 직원들(본사만 2000여 명)의 야식을 만드느라 인근 피자·치킨 가게의 재료가 동날 정도였다. 그런 노력 끝에 세계 최초로 1.5G㎐ 듀얼코어 스마트폰을 완성할 수 있었다.

 박 부회장에게 올해는 특별하다. 팬택 창립 20주년이자 2006년 시작된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을 졸업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스카이’ 브랜드가 확고히 자리 잡는 원년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이를 위해 ‘페라리’를 들고 나왔고, 가장 빠른 속도의 스마트폰 개발에 절실히 매달렸다. ‘스피드가 문화다’라는 베가 레이서의 제작 키워드도 직접 창안했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문화 생활을 만끽하려면 빠른 속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팬택은 지난해 처음 스마트폰을 출시해 지금까지 100만 대를 팔았다. 국내 시장점유율 14%로 삼성에 이어 2위다. 미국·일본 등 해외 시장의 반응도 좋다. 브랜드 마케팅보다 품질을 내세워 미국 최대 통신업체 AT&T가 주는 최우수 품질 제조사 상을 3분기 연속 받았다. 팬택은 7월께 미국시장에 4세대(4G) 이동통신망인 롱텀에볼루션(LTE)용 스마트폰을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에는 네트워크가 갖춰지는 10월께 출시하려 한다.

 애플과의 정면 승부도 준비 중이다. 신형 아이폰이 출시될 9월께 이에 맞서는 새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19일 베가 레이서 출시 간담회장에 잠시 들른 박 부회장은 “애플과 붙으려면 보름쯤 쉰 뒤 또 날밤 까야지”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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