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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구리왕’에 수천억 세금 물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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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차용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 이어 ‘구리왕’ 차용규(55·사진) 씨에 대해 국세청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18일 국세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은 국내에 머물고 있는 1조원대 자산가 차씨와 연락을 취하며 심층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2005년 카자흐스탄 구리업체 카작무스의 영국 증시 상장 및 지분 매각 과정에서 1조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올린 그가 세금을 탈루했는지 등이 조사 대상이다.

 국세청은 지난달 4101억원을 추징한 권혁 회장의 과세 사례를 참고해 차씨가 국내 세법상 거주자였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주로 홍콩과 영국에 머물렀다며 이를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 관계나 출입국 기록 등을 보면 실질적인 거주지가 국내였다는 게 국세청 시각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수천억원대 세금 추징이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권 회장과 수평 비교하기는 무리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권 회장은 해운업체를 운영하는 특수성 때문에 과세 요건을 갖추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권 회장은 본사가 홍콩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금융을 통해 배를 사들이고, 국내 해운업체에 용선하는 과정에서 국내 법인이 사업을 주도했음이 드러났다. 이 점이 유력한 과세 근거였다.

 하지만 차씨의 경우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릴 당시 카자흐스탄과 런던에 머물렀다. 돈을 번 과정도 사업이 아니라 단 한번의 주식거래였다. 게다가 차씨는 2006년 9월 카작무스의 지분을 모두 팔고 공식석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거주자 입증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는 경기고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삼성물산 상무보로 퇴직했다. 국세청은 현재 차씨의 국내 투자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2∼2006년 사이 은마상가, 건영옴니백화점, 대치동 해암빌딩 지분 등 수천억원어치의 부동산을 W사, I사가 사들였다. 이들은 해외 조세피난처에 적을 둔 페이퍼 컴퍼니지만 실제 소유주는 차씨라는 것이다. 차씨는 최근 몇몇 회사의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 사채 투자에도 수백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무당국이 국내 투자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과세의 타깃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카작무스 지분 42.55%를 소유하다가 2004년 6월 철수한 삼성물산은 차씨 지분 인수 과정에 대한 의혹이 잇따르자 해명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당시 구리 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1년 뒤 상장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보유주식을 매각한 것”이라며 “지분은 차씨가 아닌 당시 페리 파트너스사에 팔았 다”고 말했다. 차씨는 2008년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1000명에서 재산 14억 달러(약 1조5000억원)로 843위에 오르기도 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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