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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젖병 불안만 부추긴 식약청 어설픈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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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엄마들은 아기에게 가장 안전한 젖병을 물리고 싶어 한다. 이런 엄마들에게 일부 젖병에 환경호르몬 의심물질(비스페놀A)이 함유돼 있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나갔다. 갑자기 값이 서너 배 뛴 ‘무(無) 환경호르몬’ 젖병이 나왔지만 지갑을 열어야 했다. 하지만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분유를 먹일 때 평소 사용하던 5000원대 폴리카보네이트(PC) 재질로 만든 플라스틱 젖병에 넣어 먹여도 비스페놀A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확인하고도 해당 제품에 대해 판매금지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식약청의 섣부른 행정이 수많은 엄마들을 불안케 했다. <중앙일보>5월 18일자 20면>

 실상은 이랬다. 올 3월 식약청은 비스페놀A 함유 젖병 사용의 전면 금지 방안을 행정 예고했다. 캐나다·유럽연합(EU)이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는 비스페놀A 함유 젖병에 대한 제조·수입·판매를 금지한 데 따른 조치였다. 대세(大勢)에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비스페놀A를 함유한 폴리카보네이트 재질 젖병은 금세 젖병 판매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식약청의 금지방안에 따라 일부 젖병 제조업체가 폴리카보네이트 젖병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젖병업체들은 비스페놀A가 함유되지 않은 젖병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값은 2만~3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런 젖병들도 환경호르몬 함유가 의심된다는 해외의 유명 연구논문이 국내에서 뒤늦게 공개됐다. 일부 엄마가 “내 아이에게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젖병을 물릴 수 없다”면서 비싼 젖병을 산 뒤였다. 결국 젖병값만 올렸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식약청은 “사전 안전관리 강화 차원에서 비스페놀A 함유 젖병 사용을 금지한 것이니 소비자가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식품행정에는 또다시 깊은 불신을 남겼다. 선진국에서 규제한다고 해서 철저한 과학적 검증도 없이 덩달아 규제에 나서면서 혼란만 일으킨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은 신중했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만 비스페놀A 함유 젖병의 판매 금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식약청의 섣부른 행정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컵라면 용기의 환경호르몬 의심 물질 논란이나 ‘쓰레기 만두’ 사건 등도 엉성하게 대처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안전’ 명분을 앞세워 면피성 행정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더 신중하고 더 과학적으로 일하는 식약청이 돼야 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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