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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우량 중소기업 M&A 조건으로 자금 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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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22대 3.

 도입된 지 1년이 지난 스팩의 성적표다. 스팩은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라는 영문명처럼 기업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장부상 회사(페이퍼 컴퍼니)’다. 지난해 3월 3일 상장한 국내 1호 스팩은 ‘대우증권그린코리아스팩’이다. 이 스팩의 공모주 경쟁률은 90대 1에 육박했으며, 자금도 1조원 넘게 몰렸다. 스팩은 도입 당시만 해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국내에 상장된 스팩만 22개, 전체 공모액은 5500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1년 후 성적은 초라하다. 22개 스팩 가운데 ‘페이퍼 컴퍼니’의 설립 목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 중인 곳은 3개뿐이다. ‘대신증권그로쓰알파스팩’이 썬텔과, ‘신영해피투모로우제1호기업인수목적’이 알톤스포츠와, ‘HHMC아이비제1호기업인수목적’이 화신정공과 합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스팩을 통한 기업공개(IPO)가 전체의 20%가량을 차지하는 것을 고려하면 볼품 없는 수치다. 이달 초까지 22개 중 17개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스팩의 구조는 간단하다. 증권사는 기관투자가 등을 발기인으로 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다. 그런 다음 상장되지 않은 우량 업체를 M&A하는 조건으로 공모를 통해 자금을 모은다.

상장 후 스팩 경영진은 실적 좋고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을 합병해 시세 차익을 얻는다. 주가가 오르게 되면 투자자도 이익을 얻게 되는 구조다. 하지만 스팩이 3년 내에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상장 폐지되고 투자자에겐 투자 원금의 90% 이상을 돌려준다.

 국내 스팩 가운데 처음으로 합병을 진행한 대신증권그로쓰알파스팩은 썬텔과 합병하면 스팩 투자자는 합병회사 지분의 25%를, 썬텔 주주는 75%를 갖게 된다. 이 스팩이 200억원 규모인 점을 고려하면 썬텔은 200억원을 받고 주식의 25%를 판 셈이 된 것이다. 이 회사는 자연스레 상장도 하고 자금도 모으는 효과를 얻게 된다.

 우량 중소기업 입장에선 투자 자금을 모을 수 있어서 좋고, 투자자 입장에선 주가가 올라 이익이 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도 스팩의 M&A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론 우량 중소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등이 꼽힌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M&A 대상 기업 가치 산정 방식이다.

 대우증권 남기천 고유자산본부장은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에 대해 평가를 해줘야 하는데 현 제도는 이런 성장성을 제대로 반영해주기 어렵게 돼 있다”며 “M&A 대상 기업을 저평가하는 현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요즘 스팩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잇따라 3개 스팩이 M&A에 성공하면서 스팩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스팩 활성화를 위해 제도의 보완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최근 1호 스팩의 M&A에 성공한 HMC투자증권이 얼마 전 2호 스팩을 설립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 회사는 2호 스팩도 자동차부품 소재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9월까지 공모와 상장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세종대 김갑래 교수는 “스팩 주가가 공모가를 상회해 이유 없이 급등할 땐 추격 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기업 인수에 관한 시장 정보 없이 급등한 스팩 주가는 다시 공모가 수준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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