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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스칸 성범죄 지켜보는 미국·프랑스 시각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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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Dominique Strauss-Kahn·62)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범죄 혐의 사법 처리 과정을 지켜보는 프랑스인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하다. 체포되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 50% 안팎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통령 자리에 성큼 다가섰던 인물이니 만큼 적어도 프랑스인 절반은 그런 심정일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미 경찰의 체포와 호송 과정에 불만이 많다. 16일(현지시간) 뉴욕 경찰이 그를 법원으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몸 뒤로 수갑을 채우고 사진기자들에게 그런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공개한 것에 상당한 반감을 드러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수갑 찬 DSK(스트로스칸의 약칭), 충격적 이미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뉴욕 경찰에 대한 각계의 비판을 전했다. 스트로스칸이 소속된 사회당의 마르틴 오브리(Martine Aubry·61) 당수는 “매우 모욕적인 일”이라고 표현했다. 전 법무장관인 엘리자베스 귀구(Elisabeth Guigou·65)는 “야만적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중진의원 마누엘 발(Manuel Valls·49)은 “용인할 수 없는 잔인한 행위”라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이 스트로스칸의 수갑 찬 모습에 자극을 받은 것은 자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찰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용의자나 피고인이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 인권보호 차원에서 아예 법으로 금지돼 있다. 설사 누군가 그런 장면을 포착했어도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단순 용의자일 경우에도 그런 모습이 흔하게 언론에 공개된다.

 일부 프랑스인은 뉴욕 경찰이 스트로스칸을 경찰서와 구치소에 구금하며 잡범들과 뒤섞어 놓은 것에도 분개하고 있다. 일국의 주요 지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정치인의 성적·도덕적 일탈에 관대한 프랑스의 문화와 언론계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이 주요 뉴스로 보도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며 역대 지도자들의 성추문 사례를 모아 보도했다. FP는 프랑수아 미테랑(1916~96년·재임 1981~95년) 전 대통령에게 숨겨진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94년 뒤늦게 밝혀진 것도 사례로 들었다. 미테랑은 재임기간 중 거의 모든 밤을 미술사학자인 안 팽조의 아파트에서 보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마자린은 96년 미테랑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79·재임 1995~2007년) 전 대통령의 경우 부인 베르나데트가 남긴 “여성편력이 심한 잘생긴 남자와 같이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기록이 문제가 됐다. 베르나데트는 또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는 두 아이 때문”이라고 썼다. 시라크는 70년대 총리 시절 한 기자와 오랫동안 불륜관계였다는 보도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56) 현 대통령은 2007년 취임 직후 11년간 살아온 두 번째 부인 세실리아와 이혼했다. 그리고 이혼 후 4개월도 안 돼 모델인 카를라 브루니와 재혼했다. 최근 사르코지와 브루니는 각자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FP는 미테랑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현 프랑스 문화장관인 프레데리크 미테랑(Frédéric Mitterrand·64)도 사례로 들었다. 작가인 그는 2005년 자서전 『불량인생』에서 태국에서 불법적인 소년 동성애를 경험했음을 밝히지만 장관직에 올랐다는 것이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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