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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분석] 베낄수록 애국자로 칭찬받는 ‘짝퉁 중국’ 공공의 적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의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율은 78%에 달한다. SW 10개 중 8개를 공짜로 복제해 쓴다는 얘기다. 이런 '짝퉁 중국'의 실상은 국제 민간기구인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발표한 ‘2011 세계 SW 불법복제 현황 보고서’에 적시됐다. 조사대상 116개국의 평균치는 4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치는 27%였다. 중국의 불법복제율 순위는 세계 86위이다. 케냐ㆍ세네갈과 비슷한 수준이다. 불법복제로 인한 손실액은 77억7900만 달러나 된다. BSA아시아ㆍ태평양 총괄인 롤랜드 찬 이사는 “10년 전에는 중국의 복제율이 98%였다"며 "낮아졌다지만 짝퉁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일명 ‘짝퉁 시장’으로 불리는 야시오우 시장의 모습이다.

◇‘짝퉁 천국’ 중국=중국은 세계적으로 ‘짝퉁 천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불법복제가 만연해 있다. SW 뿐만이 아니다. 영화ㆍ음악ㆍ도서 등 콘텐트와 자동차ㆍ전자제품 등 각종 상품 등의 베끼기가 일상화됐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자국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매년 지정하는 지재권 우선감시대상국 리스트의 ‘단골 손님’이다. 올해 역시 77개국 중 러시아·인도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중국의 불법복제로 인한 각 분야별 저작권 피해액은 산정조차 어렵다. 인구 조사도 힘든 나라여서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베끼는지 파악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불법 윈도우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정품을 반값에 주겠다고 회유했다. 워너브러더스는 해적판 DVD가 기승을 부리자 한 푼이라도 건져보겠다고 정품 가격을 5분의1로 할인해 팔았다. 일본콘텐츠해외유통촉진기구는 아예 중국 지방정부와 공조해 정기적으로 불법복제물을 압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해운대’가 중국에서 개봉된 후 일주일 만에 불법 파일이 인터넷에서 유포돼 120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엔 미국 SW업체 사이버시터가 중국 정부를 상대로 22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반정부 사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설치되는 SW를 불법으로 복제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의 가짜 상품을 파는 중국 광저우 가죽제품 시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출처=AP)

◇베낄수록 칭찬하는 중국의 인식=전문가들은 중국이 단시간 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양대 윤선희(전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장) 교수는 “중국 기업ㆍ국민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무척 낮은 수준”이라며 “또 인구가 많고 땅이 넓어 일일이 규제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민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밑바닥이다. 베끼면 베낄수록 '애국자'로 칭찬받는 지경이다. 절도가 충성으로 둔갑하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실제로 2년 전 MS 운용체계(OS)인 윈도XP 해적판을 판매한 혐의로 징역ㆍ벌금형을 받은 토마토레이닷컴 운영자가 구속됐다. 이를 두고 네티즌은 “중국민을 위해 잘한 일”이라며 그를 지지하는 모임이 생겼다. 범법자를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것이다. 중국 당국의 단속도 겉핥기 수준이다. BSA차이나 웨이 덩 의장은 “그동안 중국 당국이 저작권 보호를 위해 단속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불법복제시 과태료가 적고 정부의 의지도 저조하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시민이 DVD판매점에서 불법복제된 DVD를 살펴보고 있다.

◇짝퉁 때 벗으려 노력은 하는데 '글쎄'=중국 정부는 짝퉁 때를 벗기 위해 최근 몇몇 조치를 취했다. 지난해 말 상하이 법원이 중국의 한 보험공사에게 ‘MS사에 217만 위안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저작권에 관한 한 '모르쇠'로 일관하던 중국에선 너무 이례적이어서 국제적 관심까지 받았다. 작년 10월부터는 4100만 위안의 예산을 들여 해적판 콘텐트 퇴치’의 저작권 보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3000여 명의 지적재산권 침해 사범을 체포했다. 올해 10월까지 ‘짝퉁’ 소프트웨어를 쓰는 공무원은 징계할 방침이다. 중국 국가판권국 옌샤오홍 부국장은 “올해는 저작권법을 국가적 의제로 내세워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싸늘하다. 중국이 해적행위를 어느 선까지 척결할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저작권위원회 베이징사무소 안성섭 소장은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이 불법복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MS는 글로벌 대형 기업이어서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작권 교육을 받는 중국인은 0.02% 밖에 안된다”라고 덧붙였다.

◇각국 중국을 '공적'으로 공동대응=각 국은 지적재산권 사무국을 중국에 설치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복제물을 적발, 국가판권국에 신고한다. SW업체의 경우 BSA 기구를 설치해 불법복제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펼친다. 다른 나라가 중국에 취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개방된 중국이라지만 지적재산권만큼은 폐쇄적이라는 얘기다. 롤랜드 찬 이사는 “중국 분위기를 고려해 처벌보다는 계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세계 각국은 지난해 10월 불법복제ㆍ유통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도출하자는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물론 중국은 뺐다. 한국ㆍ일본ㆍ미국ㆍ유럽연합(EU) 등 37개국의 차관급 대표가 참여했다. 이들 국가대표들은 위조 및 불법 복제 방지협정(ACTA)을 체결했다. 협정에는 각국 세관에 지적 재산권 소유자의 요청이나 법원 명령 없이도 불법복제된 제품을 압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합의에 중국을 끼워넣지 않은 것은 강력한 협정 내용을 도출하기 위해서였다. 협정은 곧 발효된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지, 해적국가로 남을지는 협정이 발효된 뒤 참여하느냐에 달렸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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