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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김정일의 미소 안 보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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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희창
수석논설위원

다시 되뇌고 싶지 않지만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사태는 우리 군의 완패였다. 경계, 작전기도 파악, 실제 대응에서 심각한 수준의 허점을 드러냈다. 북한군은 성동격서(聲東擊西)식 교란과 기습 등 용의주도하게 작전을 구사했다. 천안함이 폭침되기 두 달여 전인 1월 26일과 2월 3일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실제로 1월 27일부터 3일간 백령도·대청도 NLL 북한 해상 등에 350여 발의 방사포와 자주포를 발사했다. 25일엔 북한 전투기 10여 대가 백령도 옆 NLL 인근까지 접근했다. 해상과 공중으로 남측 시선을 유도한 후 잠수함 수중침투를 감행한 것이다.

 수심이 얕은 데다, 조류가 세 잠수함 침투가 ‘불가능하다’는 한국군의 고정인식을 깨고 말이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의 참담한 패배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오죽했으면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인식해 통렬히 반성한다고 다짐했을까.

 이런 점에서 ‘군 상부 지휘구조(합참) 개편’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이전투구(泥田鬪狗)식 갈등은 매우 실망스럽다. 북한에 당한 치욕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군의 단결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반성과 단결은커녕 청와대와 예비역 장군 간에, 현역은 육군과 해·공군 간에 반목의 골만 깊어지고 있으니 이게 제대로 된 국가인지 모르겠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구상은 현재 각 군 참모총장을 작전계통에 포함시켜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각 군의 최고전문가인 참모총장이 천안함 사태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해도 작전에 관여할 수 없게 된 현 합참 체제는 모순과 낭비라는 인식이다. 또 작전권이 없는 참모총장에게 인사권이 주어져 예하 부대에서 작전(훈련)은 뒷전으로 밀리고 인사나 행정이 중시되는 것도 전투력 증진에 장애요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일리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지 개선해야 할 과제다. 문제는 대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뒤따랐다는 점이다. 국방체제의 축을 바꾸는 것은 그야말로 중대하고도 지난한 과제다. 각 군별로, 특기별로 입장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해·공군 전·현직 참모총장들은 육군이 차지할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게 되면 군의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소통과 설득이다. 조그만 공사 하나 하려도 환경평가 등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방부는 일방통행으로 나갔다. 제대로 된 공청회 없이 대통령 결재부터 받아놓고 반대하면 ‘항명’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뒤늦게 ‘예비역 장성 대상 설명회’, 6월 초엔 ‘국민 대토론회’까지 개최한다고 한다. 명칭도 처음엔 대통령이 결재한 3월 7일을 의식, ‘국방개혁 307계획’으로 했다가 2011년에서 2030년까지 추진한다는 의미인 ‘국방개혁 기본계획 11-30’으로 바꿨다. 수순이 잘못됐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군 상부 지휘구조 개편에 관련된 당사자들은 모두 호흡을 잠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방부 정책국장·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장성 예비역 대장 등 육군 출신 장성들까지도 왜 국방부 안(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지 경청해야 한다. 예비역 해·공군 참모총장들도 국방부가 주최한 ‘국방개혁 설명회’에 불참하는 것보다는 참석해 자신들의 의견을 밝히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공기무비(攻其無備:대비하지 않은 곳을 공격)로 나오는데 우리 군의 최상층부가 이렇게 반목만 하고 있으면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겠나.

안희창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