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살 맨발 닮고 싶어요 … 강수진 선생님 멘토 돼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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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엔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꿈이 있어 행복한 아이들이 있다. 본지는 이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멘토’와 이어주는 기획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롤모델에게 직접 조언을 듣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꿈을 실현시켜 주자는 취지다. 많은 청소년이 희망의 문을 두드려 주길 기대한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독자들의 후원도 받는다.

문의 : 중앙일보 사회부

강주영양은 발레리나 강수진씨처럼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고 싶다. 주영양이 전통춤에 발레를 접목한 창작 무용을 연습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강수진씨와 그녀의 발(아래쪽)

뼈가 뒤틀리고 마디마디 굳은살이 박여 마치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돈나 강수진(44)의 맨발이었다. 하루에 19시간씩 연습했다고 했다. 발레를 갓 시작한 열한 살 주영이는 물끄러미 자신의 발을 내려다봤다. 부드럽고 고왔다. 주영이는 이 발이 강수진의 발처럼 될 때까지 연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년 전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용수의 체형이에요. 어머님, 주영이는 무용을 시켜야 할 것 같아요.”

 초등학교 방과후 교육 활동에서 강주영(14·광주 우산중 2)양을 처음 가르쳤던 광주여대 서영(무용과) 외래교수가 주영이의 어머니 김애자(52)씨에게 말했다. 초등학생이라고 하기엔 동작이 시원시원했고 체형도 잘 잡혀 있었다. 5학년 때 취미로 시작했지만 대회에 나갈 때마다 상을 받아왔다. 전국학생무용대회 초등부 1위, 광주여대 주최 한국무용부문 동상….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었다. 공연을 처음 본 날, 어머니 김씨는 놀랐다. 남 앞에 서는 것을 수줍어하던 아이가 무대 위에선 날아다녔다. 김씨는 “떨지도 않고 마냥 웃고 있는데 우리 막내딸이 아닌 것 같았다”며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힘들어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영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2009년 말 고비가 왔다. 본격적으로 무용을 하려니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한 번 대회에 나갈 때마다 교통·숙박비, 대회참가비·화장비 등 50만원이 훌쩍 넘게 들었다. 레슨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남편과 따로 살고있는 김씨는 세 자매를 키우기 위해 포장마차, 식당 아르바이트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6년 전 암에 걸린 후 투병생활을 하느라 기력도 쇠한 상태였다.

 주영이는 자연스럽게 학원을 끊었다. “무용을 그만두고 나서 처음엔 친구들이랑 놀 수도 있고, TV도 마음껏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계속 머릿속에 무용 생각이 났어요. 연습하는 꿈도 꾸고요. 제가 정말 무용을 좋아하고 있구나 깨달았죠.” 김씨는 국내외 저소득층 청소년의 교육·복지를 지원하는 NGO단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재양성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인지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 주영이의 얼굴에 다시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지난해 5월 주영이는 다시 무용을 시작했다. 수상 실적을 인정받아 레슨비를 지원받게 된 것이다. 전통춤을 기반에 둔 ‘창작무용’을 택해 한국무용과 발레를 함께 연습하고 있다. 주영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연습실로 달려간다. 5개월가량 무용을 쉰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자정이 될 때까지 연습을 거듭한다. 김씨가 “제발 좀 쉬라”며 걱정할 정도다. 주영이는 힘들 때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맨발’을 떠올린다. 열여섯의 나이에 유학생활을 시작해 세계 최정상에 오른 그를 본받고 싶다. 주영이는 독일에 있는 강수진씨에게 e-메일을 보냈다. “선생님의 발레 동영상을 찾아보며 아름다운 선과 동작에 저도 모르게 집중이 됐습니다. 선생님의 발은 진짜 세상에서 하나뿐인 ‘노력의 발’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처럼 세계적으로 훌륭한 무용가가 되고 싶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후원문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1588-1940 (www.childfund.or.kr)

 광주=김효은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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