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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 잘 내니 골프도 잘 치죠 … 뇌에서 힘 빼긴 어렵네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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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20면

지난 9일 경기도 안산의 제일골프장에서 라운드를 마친 투코 회원들이 웃으며 클럽하우스를 향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개그맨 김병만, 김준호, 배동성씨. 안산=조용철 기자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골프도 힘을 빼는 게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도 뇌의 힘을 빼는 게 가장 힘들죠.”

골프에 푹 빠진 ‘달인’ 김병만과 개그맨들

그는 ‘욕심을 버린다’는 얘기를 ‘뇌의 힘을 뺀다’고 돌려 말했다. 과연 개그맨다운 감각이었다.
‘달인’ 개그맨 김병만(36)이 골프에 푹 빠졌다. KBS 개그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에서 매주 차력사나 곡예사를 방불케 하는 고난도 묘기를 보여주고 있는 김병만. 그는 코미디언들의 골프 모임인 ‘투코(투어스테이지 코미디언)’ 멤버로 꾸준히 필드에 나간다. 지난 9일 투코 멤버들이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 경기도 안산의 제일골프장으로 달려갔다.

280m 장타자, 샷 이글도 두 번 기록
김병만은 어려서부터 태권도·합기도·우슈·격투기 등 각종 무술을 섭렵했다. 합기도 입문 3개월 만에 시범단에 뽑힐 정도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한다. 달인의 골프 실력도 탁월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한 지 1년6개월 만에 80타대를 친다.

1m59cm의 작은 키지만 드라이브 거리가 270~280m나 나간다. 그는 “모든 운동의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 임팩트를 잘 이해하면 된다”며 “스케이트·외줄타기 등 모든 동작이 그렇듯 먼저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81타. 장타자다 보니 샷 이글도 두 번이나 기록했다. 한 라운드 최다 버디는 4개. 그는 “버디나 파를 쉽게 하는 편인데 아직 구력이 짧다 보니 ‘양파’ 등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이 점만 보완하면 안정된 70타대는 칠 수 있을 것 같다. 이왕 시작한 만큼 언더파를 쳐보는 것이 목표다”라고 웃었다.

투코 회장으로 19년간 골프를 친 코미디언 배동성(46)씨는 “병만이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스펀지처럼 습득력이 정말 뛰어나다.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노력하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병만은 멤버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연습벌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그가 지금껏 밤을 새우면서 해본 운동은 골프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는 “스케줄 때문에 새벽에 라운드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한 시간만 자고 라운드를 했는데 스코어가 엉망이었다. 열을 받아서 라운드를 마치고 연습장에서 2시간 연습하고 곧바로 스크린 골프방으로 가서 세 게임을 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재미있는 걸 하니깐 힘든 줄도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골프 삼매경에 푹 빠진 그는 아예 여의도 KBS 옆에 스크린 골프방을 차리기로 했다.

김병만은 지인의 권유로 4년 전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그는 모든 운동은 처음부터 정석으로 배워야 한다고 믿고 있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했지만 9개월 동안 ‘똑딱볼’만 쳤다. 지루하고 필드에 나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처음 나간 날 94타를 쳤다. “해 보니 별거 아니다 싶고 당시에는 골프를 치는 동료 개그맨들도 별로 없어서 바로 그만뒀다. 2년 전 스크린 골프 붐이 일면서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그는 골프의 가장 큰 매력으로 사교성을 꼽았다. “낯선 사람들과 술 먹으면서 형, 동생을 맺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전화 걸기가 좀 꺼려진다. 하지만 골프는 낯선 사람들과 5시간 정도 함께 운동하니깐 서너 번 만난 사람처럼 금방 친숙해진다. 골프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날 함께 라운드를 한 개그맨들은 대부분 골프를 시작한 지 2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90타대 정도는 쳤다. 정명훈(32), 홍인규(31), 김준호(36) 등은 80타대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개그맨들이 골프를 잘 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배동성 회장은 “개그맨들이 골프를 잘 치는 이유는 흉내를 잘 내기 때문이다. 순발력이 좋고 두뇌회전이 빠른 것도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김병만은 “개그맨이면 누구나 모창·성대모사 하나 정도는 할 줄 안다. 그만큼 관찰력이 뛰어나다. 또한 창의력이 풍부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골프를 잘 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달인도 일반 골퍼들처럼 어프로치 등 쇼트게임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로브 샷, 러닝 어프로치 등 다양한 샷이 필요한데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린 주변에서 타수를 잃을 때가 많다고 한다. 헬스 대신에 하루에 1~2시간씩 골프 연습을 하고 있다는 김병만은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은 정직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연습한 만큼 필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연습을 안 하고 스코어가 잘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기 바라는 것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골프는 생각만 해도 설레는 여친”
미혼인 그는 골프를 여자친구에 비유했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라운드 전날에는 라운드할 생각에 설레다 보니 잠이 안 올 정도다.”

다른 개그맨들에게 골프에 대한 정의를 부탁했다. 개그맨 특유의 유머가 쏟아졌다. 달인 코너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류담(32)은 ‘골프는 삼겹살이다(평생을 자기와 함께해야 하기 때문)’. 김준호는 ‘동료 개그맨 김대희다(드라이버로 확 패고 싶으니까)’, 정명훈은 ‘부업이다(내기 수입이 짭짤하니까)’, 홍인규는 ‘마누라다(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안 보고 싶을 때도 있다)’라고 정의했다.

개그맨들의 라운드 분위기는 어떨까. 일반 골퍼들처럼 내기가 없으면 상대에게 후한 편이지만 내기가 시작되면 PGA투어 룰을 적용한다고 한다. 배동성은 “얼마 전 명훈이가 처음 79타를 기록해 싱글패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첫 홀을 캐디가 올 파로 적었다며 사양했다. 개그맨들이 자신에게 엄격하고 룰도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캐디를 맡은 김선화씨는 “미스 샷이 나와도 화를 내기보다는 ‘일부러 웃기려고 그랬다’는 등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플레이 순간에는 진지하지만 이후에는 마치 개그 프로를 보는 듯했다. 역시 개그맨들이라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만은 언젠가는 달인 코너에서 꼭 한번 골프를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를 통해 이 세상에 쉽게 되는 건 없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개그도 마찬가지다. 남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대에서나 필드에서 모두 웃음을 줄 수 있는 진정한 달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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