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평등 건강보험료 <하> 저소득층도 고달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최모(56)씨는 2월 말 건설 노동일을 그만뒀다. 직장건강보험 가입자로 있으면서 매달 7만3300원의 건보료를 내다가 지역가입자로 바뀌어 12만3880원으로 올랐다. 아파트(지방세 과세표준액 1억31만원)와 승용차(2004년식 마티즈)에 각각 7만2610원, 1820원의 건보료가 나온다. 소득이 없는데 보험료가 올라간 것보다 더 화나는 게 있다. 평가소득 보험료다. 실제 소득이 없는데도 건강보험공단은 최씨의 생활 실태를 평가해 월 4만9450원의 ‘소득 건보료’를 매겼다. 아파트와 승용차가 있고 전업주부인 아내(55)와 아들(27·무직)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고 별도의 보험료를 매긴 것이다. 아파트에는 1만8210원, 마티즈에는 5010원을 물렸다. 아파트·재산 건보료가 따로 있는데 또 매긴 것이다. 게다가 조선시대의 ‘인두세’처럼 최씨와 아들에게는 각각 9520원, 아내에게는 7190원의 건보료가 부과됐다.

 #광주광역시에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신모(54)씨는 연간 650만원을 번다. 신씨는 아파트(과표 1억31만원)와 9년 된 중형차, 소득에 대해 14만7700원의 건보료를 낸다. 그게 전부다. 아들(25)과 아내(52)에게는 건보료가 없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연 소득 500만원을 기준으로 지역 건보 부과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500만원이 넘는 사람은 소득·재산·자동차에 건보료를 물면 된다. 500만원 이하의 서민이나 저소득층이 재산·자동차에 건보료를 무는 것은 500만원 초과그룹과 같다. 하지만 소득 건보료는 다르다. 500만원 이하 그룹은 소득이 있어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소득을 축소 신고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대신 평가소득을 산출한다. 가족 수와 나이, 재산이나 자동차를 따져 ‘이 정도면 얼마를 벌 수 있다’는 식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소득이 없거나 제대로 신고한 사람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가족 한 명당 7000~1만원의 건보료를 매기는데, 이는 직장건보 피부양자가 아무리 많아도 보험료가 달라지지 않는 점과 대비된다. 최씨의 평가소득 건보료 4만9450원은 월급 177만원의 직장인 건보료에 해당하는데 과연 최씨의 살림살이가 그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지역건보 가입자 백시열씨는 “건보공단에 항의했으나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이 낮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며 “서민들을 ‘잠재적 거짓말쟁이’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가입자의 80.8%가 연 소득 500만원 이하라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난수표 같은 부과기준에 혀를 내두른다. 생업수단인 화물차에 최고 9800원의 건보료를 매기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화물차주 일부는 사업자등록을 하고 사업소득 보험료를 내는 데도 차에 이중 부과하는 것이다.

  소득·재산 건보료가 소득이 낮은 층에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소득 500만원과 5000만원은 10배 차이지만 건보료는 3.26배 차이 난다. 고소득자에 비해 소득이 적은 사람의 부담이 높다는 얘기다. 연세대 김진수 (사회복지학과)교수는 ‘건보료 부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연 소득 500만원 이하 그룹에 적용하는 평가소득 제도를 폐지하고 실제 소득에 건보료를 매기되, 가구 단위로 월 6700원 정도의 기본보험료를 부과해 기준을 단순화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재산과표 하한선을 1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려 하위 20%의 지역가입자들의 재산 건보료를 면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유미 기자

◆평가소득 보험료=연 소득 500만원 이하의 지역건보 가입자에게 적용한다. 이들의 신고소득을 무시하고 가족 수와 연령, 재산, 자동차를 따져 소득을 추정한다. 1998년 도입됐다. 최저 3308원, 최고 6만1529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