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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산책] 프로배구 원년 챔프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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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프로배구 원년 챔피언을 차지한 뒤 모처럼 한가해진 신치용 감독이 부인 전미애씨와 서울 도곡동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걸으며 담소하고 있다.최정동 기자

프로배구 원년 챔피언은 '제갈공명'의 몫이었다.

삼성화재 배구단의 신치용(50) 감독. 항상 봐도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머리는 온갖 작전으로 팽팽 돌아간다. 현대캐피탈과의 챔피언결정전은 무표정한 신 감독과 다혈질 김호철 감독의 모습이 대비돼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수퍼리그를 포함, 성인배구 9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그를 지난 10일 자택인 서울 도곡동 래미안아파트에서 만났다.

◆벤치에서 일어나면 진다

신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때의 비화 한 토막을 공개했다. "정규리그에서 현대와 2승2패를 했는데, 진 이유를 곱씹어 봤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벤치에서 일어나 지휘를 한 날은 어김없이 졌어요. 그래서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일어나고 싶은 걸 꾹 참고 계속 벤치를 지켰습니다."

그 이유를 신 감독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벤치에서 일어나면 게임을 읽는 시야가 좁아지고, 흥분하기 쉽습니다. 또 선수들도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나의 코치는 혜인이

신 감독의 부인은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전미애(46)씨고, 둘째 딸은 '얼짱 농구선수'인 혜인(20.신세계)이다. 유명한 스포츠 가족이다. 경기도 수지의 삼성배구단 숙소에서 선수들과 주로 생활하는 신 감독은 늘 가족에게 미안해한다. "형편없는 가장이죠. 애들 태어나서부터 지도자 생활 하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였으니까요. 겨울엔 시즌이라 못 들어가고, 여름엔 대표팀 코치로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하느라 못 들어가고. 집에 들어간 날이 1년에 고작 두세 달 될 겁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겨울리그 8연패를 한 뒤 네 식구가 처음으로 괌 여행을 갔다고 했다. "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한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죠." 그래서 집에 들르는 주말이면 네 식구가 뭉쳐 다닌다. 영화도, 외식도, 심지어 포장마차에도 같이 간다. "우리 애들은 어려서 아빠를 못 봐서 그런지 이렇게 커서도 같이 있는 걸 좋아해요."

큰딸 혜림(22.대학생)이는 신 감독과 주량(소주 1병)이 비슷하고, 아내와 혜인이는 한 잔도 못한다. 하지만 같이 포장마차에서 대화하는 걸 꽤 즐긴다고 한다. 혜인이는 선수 입장에서 아빠에게 코치도 한다. "결혼한 선수들을 숙소에 놔두고 아빠만 외출해서는 안 된다"든지, "선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건 경기 후 곧바로 훈련시키는 것" 등등.

◆눈빛으로 알았죠

신 감독은 세터 출신이다. 1977년 국가 대표선수로 뽑혀 80년까지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했다. 강만수.이인(이상 배구연맹 경기위원) 등 대선배들과 동기생 김호철 감독이 같은 선수촌 멤버였다. 그러나 '컴퓨터 세터'였던 김호철 감독의 빛에 가려 벤치에 앉은 때가 많았다. "그러나 게임을 읽는 시야가 대단했어요. 명감독이 될 자질이 그때부터 엿보였지요." 이인 위원의 칭찬이다.

신 감독은 80년 초 태릉선수촌에서 전미애씨를 만났다. 전씨 역시 농구대표로 선발돼 선수촌에서 생활하던 중이었다. "식당에서, 체육관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서로 호감이 있다는 걸 눈빛으로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주말 외출 때 시내에 나가 차나 한 잔 하자고 제의한 게 만남의 시작이었죠." 이후 둘은 신 감독의 모교인 성균관대 교정과 명륜동 카페 등에서 사랑을 속삭이다 83년 5월 결혼에 골인했다.

◆선수 이름은 믿지 않는다

"선수 이름은 믿지 않아요. 믿을 건 훈련뿐입니다."

훈련에 대한 그의 강조는 남다르다. 거기엔 일화가 있다. "97년 3월 삼성화재 창단 후 처음 출전한 겨울리그(수퍼리그)에서 우승한 다음날이었습니다. 숙소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구단 고위 인사가 전화를 하셨어요. 축하의 뜻을 전한 뒤 '이제 내일부터 또 훈련을 시작해야지'하는 거예요. 정신이 퍼뜩 났습니다. 삼성이란 회사가 이렇게 치열한 곳이구나." 그때부터 '쉼없는 훈련'이 몸에 배게 됐다고 한다.

신동재 기자<djshi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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