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이여, 인식을 전환하라" 직설적 조언

미주중앙

입력

"빈 라덴 그의 죽음으로 / 흑암 시대 벗어나 안도"
"삶을 빼앗는 행위는 / 알라 가르침 거스르는 것"

지난 6일 LA한인타운 4가와 버몬트 인근에 있는 남가주 최대 이슬람 사원인 남가주이슬람센터에서 열린 금요예배에 참석한 무슬림들이 기도하고 있다. 이날 예배는 오사마 빈라덴 사망 이후 열린 첫 공식 집회로 올해들어 가장많은 1500여명의 무슬림들이 참석했다. 김상진 기자

"지난 주 전세계가 놀란 충격적 사건을 말하고자 합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death)입니다." 설교는 직설적이었다. 시작부터 핵심을 찔렀다. 성인 남성 무슬림 400여명이 빼곡히 앉은 대 예배당은 한순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예배당 문턱을 넘던 지각 교인들 조차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난 6일 낮 12시 40분 LA한인타운내 4가와 버몬트 애비뉴에 있는 '남가주 이슬람센터(Islamic Center of Southern California·ICSC)' 의 금요 예배는 예민한 곳을 찔린 듯 불편한 정적과 함께 시작됐다.

이날 예배는 무슬림들에게는 의미가 깊다. 개신교에 빗대면 주일 대예배로 지난 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뒤 열린 LA 무슬림들의 첫번째 공식 집회다. 또 알카에다가 빈라덴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천명한 날이기도 하다.

관심을 반영하듯 본당을 비롯한 4개 예배당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본당에서 밀려나 홀 바닥에 깐 양탄자 위에 엎드린 사원 봉사자 라힘 아리프(56)씨는 "올 들어 가장 많은 1500명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민감한 시기에 강단위에 선 설교자는 이 사원의 설립자이자 교회의 원로 목사격인 메헤르 헤투트(76.사진) 박사다. 그는 연로했지만 설교는 단단했다. '윤리(moral)'라는 보편적 잣대를 들어 무슬림으로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원칙을 설명했다. 정도를 벗어난 행위와 생각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와 무슬림 형제 양쪽 모두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 몇 일간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들에게 '빈라덴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았을 것"이라며 "어떻게 답변했는가?"라고 되물었다. 헤투트 박사는 "나는 빈라덴을 두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우리(무슬림)가 흑암의 시대에서 벗어나 안도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백악관 앞에서 춤을 출 수는 없다"고 경계를 갈랐다.

그는 "삶을 빼앗는 행위는 생명으로 윤리체계를 완성하는 '알라'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살인에 대한 비난은 테러분자나 미국정부나 누구에게든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헤투트 박사는 공개되지 않은 빈라덴의 사망 당시 사진 때문에 불거진 음모론도 일축했다.

그는 "사진을 공개하지 않으니 빈라덴이 살아있다고 믿는 형제들이 있다"며 "또 다른 엘비스 프레슬리나 히틀러를 만들고 싶은가"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헤투트 박사는 "여긴 최첨단 특수기술이 집약된 할리우드가 있다. 사진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좀 더 현명해지라"고 헛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권면했다.

젊은 무슬림들에게도 따끔한 교훈을 던졌다. 그는 "어떤 이들은 빈라덴을 '신성한(Holiness) 영웅'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미국의 작전을 제임스 본드 영화 같다고 추켜세운다"면서 "하지만 양쪽 모두 윤리의식의 부재(absence of moral)'에서 비롯된 심각한 오류"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팽배해있다면서 "수단이 정당치 못하면 결코 목적도 선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빈라덴 시신의 바다 수장으로 비롯된 논쟁에 대해서 그는 "수 십차례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한가지만 말했다. 수장이 이슬람 관습에 맞느냐 틀리느냐는 질문에는 답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땅에서 태어나 땅에 뭍히는 자연의 법칙이 왜 이슬람의 법칙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설교를 마치며 그는 무슬림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대립과 언쟁 싸움은 승리(scoring point)가 아닙니다. 이슬람의 가치와 무슬림의 존엄성은 우리가 결정합니다. 결코 그들(비무슬림)이 우리를 규정짓도록 허용하지 마십시오."

그는 "신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위해 죽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원하신다"고 설교를 끝맺었다.

통상 설교보다 20분 더 이어진 원로목사의 설교는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집회 후 여러 교인들은 헤투트 박사를 찾아와 "감동적이었다" "가르침을 받았다"고 악수를 청했다.

무슬림들은 예배 중 서로 하나가 됐지만 사원을 나서며 이방인인 기자에게는 말을 아꼈다. 설교처럼 '이제 이슬람의 가치를 새로 정해야 할 때'라는 시대적 요구에 답을 찾는 듯 했다.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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