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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나눔이야기]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 나눔장터에 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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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지난 4월 첫 주말, 엄마·아빠와 함께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는 뚝섬 어린이 장터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이 읽던 책, 그리고 잘 쓰지 않는 장난감과 집안 소품들을 한가득 가져갔다. 평소 시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장사하는 모습을 볼 때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펼쳐놓으려니 사람들에게 용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 때문에 안팔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온갖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장사를 시작하자 그런 생각은 싹 없어졌다. 기특하다는 듯 미소를 지어주는 어른들도 계셨고, 내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아이와 엄마도 있었다. 또 내가 판 물건을 매우 맘에 들어하며 사가는 아이들을 보니 학교에서 배운 경제교육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한창 신나게 장사를 하다가 둘러보니 가져온 물건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거의 안쓴 거라며 내놓으신 고데기였다. 내가 물건을 파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누군가 가져간 것이 분명했다. 충격이었다. 나눔장터에서, 그것도 기껏해야 1000원 이상 받지 않았을 물건을 그냥 가져가다니 …. 그 사람은 그 고데기를 쓸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 속상해하는 나를 보고 아빠는 또 다른 종류의 기부로 생각하자며 위로해주셨다. 결국 나도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세 식구는 곧 장사를 마쳤다. 어린이 장터에서 물건을 판 사람은 수익금 일부를 기부해야 한다. 그날 우리가 번 돈은 4만원쯤 됐다. 처음에 나는 10% 정도만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아빠는 장터에 온 이유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잠시 후 나는 그날 물건값으로 받은 지폐와 동전 중 제일 큰 돈인 만원권 한 장을 기부 봉투에 넣었다. 그 순간 내 자신이 굉장히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부천사 임명장도 받고 기념사진도 찍고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께 칭찬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장터에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나한테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게 쓰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 평소보다 내 자신이 더 괜찮은 사람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나눔장터였다.

오지은·서울 창경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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