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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네이버는 재미가 없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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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한국 인터넷의 패자(覇者)는 포털사이트다. 뉴스 콘텐트와 검색으로 손님을 끌어 모은 뒤 광고와 인터넷 쇼핑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네이버를 거느린 NHN은 시가총액 10조원을 넘었고, 다음도 1조원을 웃돌고 있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구글조차 한국은 무덤이었다. 이런 막강한 토종 포털들이 모바일 시대를 맞아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 서로 물어뜯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NHN과 다음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스마트폰에 제공하면서 토종 검색엔진의 탑재를 방해했다”며 구글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또한 국내 2~3위 포털인 다음과 SK컴즈가 손잡고 네이버에 맞서는 어지러운 형국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포털의 황금시대는 끝물 조짐이다. 유선인터넷에선 여전히 절대 강자지만 모바일 인터넷에선 구글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포털의 급성장도 꺾어지는 추세가 분명하다. NHN의 경우 지난해 연결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주저앉았다. 구글과의 한판 싸움에 국내 반응이 심드렁한 것도 문제다. 네티즌조차 토종 포털을 편드는 분위기가 아니다. 애국심도 소용없다. 국내 시장을 지배하며 마음대로 휘두른 횡포가 싸늘한 시선이라는 부메랑을 자초했다.

 한때 토종 포털은 혁신의 선구자였다. 한메일(1997년)-다음카페(99년)-지식iN(2002년)-실시간 검색어(2005년) 같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래 전 이야기가 됐다. 포털들은 초창기부터 언론사의 뉴스 콘텐트는 헐값으로 넘겨받았다. 음원과 영상 저작권은 쓰레기 통에 던져버렸다. 이런 콘텐트 생산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포털들은 웹 트래픽을 독점하며 돈벌이에 몰두했다. 괜찮은 기술을 개발한 벤처기업은 덩치를 앞세워 흡수합병하기 일쑤였다. 염치없이 비슷하게 베끼는 ‘미투(me too)’ 전략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정보기술 전문가 김인성씨는 “구글이 국내 검색 1위로 등극해야 한국 인터넷에 희망이 생긴다”고 극언(極言)할까.

 토종 포털들이 가는 방향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구글의 경우 접속자의 체류 시간을 줄이는 게 최고의 목표다. 강력한 검색엔진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뛰어난 속도와 성능으로 사용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글은 6년 전 스마트폰의 핵심인 안드로이드를 확보해 미래를 읽는 혜안을 보였다. 이에 비해 토종 포털들은 정반대 길을 고집한다. 접속자 수와 체류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데 목숨을 건다. 더 많이, 더 오래 머물러야 광고와 인터넷 쇼핑으로 돈을 버는 단순한 구도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불길한 징조는 도전 정신의 실종이다. 포털업계의 혁신 물결이 뜸해진 2008~2010년 무렵부터 고급 인력들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을 만든 인물은 NHN의 공동창업자인 김범수 사장이다. 일본어 교육 앱인 코코네, 소셜 게임 1위인 선데이토즈 등도 NHN의 핵심 인력이 뛰쳐나와 세운 업체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언제부터인가 NHN에 재미가 없어졌다”며 입을 모은다. 벤처정신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독창성보다 성공이 검증된 모델만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흐름에 고별사를 던진 것이다.

 세계 인터넷에는 개방(開放)·상생(相生)·공유(共有)가 3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토종 포털들만 폐쇄적인 환경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분위기다. 간혹 내놓는 상품들도 이미 나와 있는 서비스를 합쳐놓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창의성과 감동, 도전정신은 묻어나지 않는다. 국내 소비자들도 서서히 컴퓨터 앞을 떠나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통해 더 많은 정보와 뉴스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모바일 인터넷의 소셜 네트워크가 유선인터넷의 포털사이트를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갑자기 지배적 포식자인 토종포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소송과 합종연횡에 바쁜 모습에서 한국판 구글의 탄생은커녕 몰락의 징조를 읽었다면 필자만의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