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터져 '운 좋았다'고?…日 장관 또 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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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도 한국전쟁이 발발해 일본 경제의 재건을 가속화시켰다."

"다른 나라와 그 국민들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일본 정치인들의 가벼운 입이 또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무성 장관.그는 해외에서 망언을 연발하다 청중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는 망신을 당했다.

아소 장관은 지난 6일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열린 강연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며"운 좋게도 한국전쟁이 발발해 일본 경제의 재건이 가속화됐다"고 말했다."전후 최대 과제는 경제 재건이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 미군이 수많은 군수 물자를 필요로하면서 일본 경제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는 요지의 말을 하면서'운 좋게도'(fortunately)란 부적절한 표현을 거듭 사용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현장에 있었던 유학생이 국내 한 인터넷신문에 제보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위험수위'를 훌쩍 넘어선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소 장관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비유하는가 하면, 일본의'A급전범'에 대해선 "일본이 아닌 점령군이 규정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또"총리가 될 경우 최소한 일년에 한번씩은 방문할 것"이라며 야스쿠니 참배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옹호했다.

1930년대 일본의'만주침략'을 미화하는 발언도 쏟아냈다."일본이 만주인 경찰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기 때문에 당시 만주지역은 중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치안과 질서가 유지됐다"는 것이다. 더나아가 그는 미국 고위 관리들에게 이라크에서도 이같은 '일본의 만주 관리 방식'을 따를 것을 미국 고위 관리들에게 조언했다고 소개했다.

또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 관련해서는 "유엔 경비의 19.5%를 기여하고 있는 일본이 아직도 적성국 취급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임이사국 진출이 좌절될 경우, 점차 유엔 기여분을 줄이고 개별적인 해외원조를 늘리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엄포'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아소 장관의 이같은 주장들은 당시 강연 현장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특히 일부 청중들이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아소 장관의 발언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서로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 질문자는'한국전쟁이 일본 경제에는 다행스러웠다'는 식의 발언에 대해 "다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있다면 어떻게 대중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아소 장관을 향해 "정말 일본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연신 몰아붙였다.

또 다른 질문자는 아소 장관이 만주침략을 미화한 발언을 공격했다. 그는"경악스러운 발언"이라며 "이웃국가들이 일본을 불신할 것을 염려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아소 장관은"역사적 진실을 말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더나아가 아소 장관은"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 않느냐"고 질문자를 '역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만주문제를 깊히 연구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놀랍다는 것"이라는 강력한'반격'이 되돌아왔다.

아소 장관은 지난해'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했던 일'이라는 발언으로 국내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장본인. 전후 일본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의 손자이자 현재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고 있다. 또 그의 부친은 조선인들의 강제 징용으로 부를 축적한 아소 광업소의 창시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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