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반대말은 외국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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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34면

내가 아는 미국인 친구는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불리는 게 언짢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모인 그 자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외국인’이란 말을 놓고 벌어진 논쟁은 이전에도 들어서 그 친구의 말이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똑똑한 친구까지 하기에 일부러 반박해봤다.

“하지만 네가 외국인인 건 사실 아니야?”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시민권을 얻었나 싶었지만 이내 답이 돌아왔다. “외국인 맞아. 단지 외국인이란 말에 경멸의 뜻이 담겼단 얘기지.”

경멸(Derogatory)이라고? 한번 따져보자. 미국인을 a라고 하고, 한국에서 일하면서 생활하는 사람을 b라고 할 때, ‘a+b=x’라는 공식을 푸는 거다. 미국인인데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x는 외국인인가, 아닌가?

내 친구의 논리에 따르면 외국인이 아니라 ‘국외 거주자(expat)’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국외거주자란 단어는 외국인보다 듣기 좋다는 얘기일까. expat은 ex-patriot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풀면 과거 애국자였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외 거주자는 한때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땅에 살면서 과거의 그 마음을 버린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아니면 고국으로부터 버림받아 돌아갈 수 없거나. 정말로 외국인보다는 국외 거주자라고 불리는 게 나은 걸까.

아마도 내 친구는 ‘국제거주자(international resident)’를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멋진 표현이다. 아이들이 ‘엄마, 저 외국인 좀 봐!”라고 하는 것보다는 “엄마, 저 국제 거주자 좀 봐!”라고 하는 것이 더 멋지게 들릴 테니 말이다. 또 국제 거주자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길고 번거롭지 않은가. 또 외국인끼리도 서로를 외국인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문제인가.

“물론 나도 스스로를 외국인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이 그렇게 부르면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아.”
친구의 이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친구가 느꼈던 감정은 더 복잡한 것이구나!
외국인이라는 한국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걸까.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아웃사이더라거나, 이방인이라거나…. 단순히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라는 가치중립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한국인 친구에게 물었다. “외국인의 반대말이 뭐냐”고. 한국인이란다. 한국인 아니면 외국인, 둘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한국 생활 8년째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이젠 완전 한국인이네(You must be Korean now).” 하지만 언젠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매일 김치를 먹고, 한국인과 결혼하면 나는 정말 한국인으로 여겨질까. 이건 국적 문제가 아니다. 훨씬 심오한 영역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한국인이어도 속지주의에 따라 자동으로 미국인이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 부모 사이에 난 아이는 미국인이다. 한국인이 되겠다는 건 상당히 무모한 생각으로까지 느껴진다. 누군가 한국인이라면, 그건 원래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외국인이라고 불리면서 친구의 마음이 어지러워진 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다.

우린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다. 사랑하는 고국이 있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가 한국인이 될 순 없겠지만, 생활의 터전인 한국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뭔가는 분명히 있다고 믿고 싶다.
결국 세계는 점점 작아지고, 우린 다 같은 지구촌 시민이고, 지구의 거주자인 것이다.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락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8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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