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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탐방 시리즈 ⑧ 아산노인종합복지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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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발달로 인해 노년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퇴직 이후 여가시간도 증가하고 있다. 노년기 여가생활을 얼마나 보람 있고 유용하게 보내느냐가 노인이 겪는 될 소외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가운데 아산노인종합복지관이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중앙일보 천안·아산이 아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았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아산노인종합복지관 동화구연 수업에 참가한 노인들이 동화 속 이야기를 주제로 각각 역할을 맡아 발표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실버세대여, 자유를 즐겨라

60세에 은퇴해 80세에 사망할 경우, 매일 8시간 자고 3시간 밥 먹고 2시간 볼일 보면 하루 11시간씩 총 8만 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8만 시간의 자유’는 남달리 건강을 타고난 사람들이나 누리던 축복이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물질적 풍요와 의학의 발달이 한국인의 수명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면서, 평범한 사람도 절반 가까운 확률로 100세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8만 시간의 자유’를 넘어 ‘16만 시간의 자유’가 공백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자유시간에 반해 농촌지역일수록 그것을 즐길만한 공간이 많지 않다.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해 시내로 나가야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늦은 나이에도 배움과 봉사, 나눔의 열망은 똑같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이동하기 편한 곳에 배움과 나눔의 공간이 있길 희망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2년에 아산시 온천 2동에 개관한 아산노인종합복지관은 일 평균 500여 명의 노인들이 찾아 노래교실과 장기·바둑 한글, 영어, 컴퓨터, 당구 등 다양한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어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또한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무료급식과 공동 생일잔치를 열어 친화의 시간을 갖는 등 다양한 내용으로 인기를 누려 왔다. 이로 인해 이용노인이 계속 늘어가고 있으며 특히 셔틀버스를 운행하면서 읍·면 단위 노인들의 이용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복지관 관계자 김미진(26)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회원들이 늘어나 현재 일 평균 500여 명의 회원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며 “지난해 회원이 400여 명이었고 2009년 회원이 310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연 평균 100여 명의 회원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도시보다 농촌지역에 노인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 이런 현상은 지속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자

3일 오전 10시 아산시 ‘아산노인종합복지관’의 한 교실. 20여 명의 노인들이 활기찬 몸짓과 부드러운 어조로 동화구연 수업에 몰두하고 있다.

 “엄마 다람쥐는 포수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치네요”

 “아기 다람쥐는 신기한 듯 포수를 바라봅니다. 엄마 저 사람은 왜 이상한 물건을 어깨에 매고 있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동화 속 주인공을 따라 해보는 이 수업은 복지관에 다니는 노인 500여 명 중 동화구연에 관심이 있는 23명의 노인들로 구성돼 있다. 단순히 동화를 읽고 즐기는 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업에 참가하는 노인은 모두 동화구연 2급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으며, 매주 3회 인근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 파견돼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공연을 선물하기도 한다.

 동화구연 반장 김경복(71) 할머니는 “사회생활을 은퇴하고 무의미한 생활만 이어지다 어느 날 문득‘앞으로도 30년은 더 살테니 즐겁고 보람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이곳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매주 화요일 복지관에서 동화구연과 한글교실 등에 참여했고, 요즘은 동화구연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근처 유치원에 나가 공연을 하기도 한다.

 회원들 앞에서 동화구연 발표를 마친 젊은 옷차림의 이정자(64) 할머니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살림하고 자식 키우느라 정신 없던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옆 교실에서는 택견수업이 한창이다. 16명의 건장해 보이는 노인들은 저마다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지도교사의 몸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이크! 에크” 벌어지지 않는 다리와 무거워진 몸 때문에 지도교사의 몸짓을 따라가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지만 전통무예를 체득하는 노인들의 눈빛에는 진지함마저 묻어난다.

 택견교실의 최고령 한용수(87)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냥 운동 삼아 다녔다”며 “1년간 꾸준히 다니다 보니 내 실력이 늘어가는 것 같아 즐겁다”라고 말했다.

지역노인을 위한 색다른 프로그램 호응

1·3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노인들과 아이들이 봄 소풍을 떠나고 있다. [사진=아산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아산시 권곡동에 사는 83세 홍원예 할머니는 동네에서도 남다른 손주 사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2남 1녀를 둔 홍 할머니는 슬하에 네 명의 손주를 두고 있지만, 최근 학업 때문에 자주 들르지 못해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5년 전 남편을 잃은 홍 할머니는 손주들의 왕래가 뜸해지자 점점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급기야 우울증에도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아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되는 1·3세대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그 곳에서 수십 여명의 새로운 손주를 얻었다. 매월 1회 펼쳐지는 이 프로그램은 지역의 소외된 노인 20여 명과 인근 7세 이하의 유아 30여 명이 함께 소풍, 전통문화체험, 1일 캠프, 요리체험, 한가위 맞이 행사, 세대통합 가을걷기, 세대공감 작품 만들기, 발표회 등을 진행한다.

 홍 할머니는 “결혼을 하면 자식 키우는 재미에 빠지고, 나이가 들면 손주 보는 낙으로 산다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손주들을 얻어 너무 기쁘다”며 “아이들 볼 때 마다 앞으로 100살 까지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갖게 된다”라며 즐거워했다.

 복지1팀장 최민경(28·여)씨는 “1·3프로젝트는 1세대의 오랜 경험과 축척된 지혜를 3세대에게 전달해 1세대와 3세대 간의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로 지난해부터 시행됐다”며 “현재 많은 회원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내년부터는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복지관에서 운영중인 ‘실버 시네마’ 동아리도 눈에 띈다. 실버 시네마는 동아리 회원들이 직접 참여해 기획과 시나리오, 촬영, 연출, 편집을 맡아 영화로 제작하는 일을 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노년기의 외로움과 전쟁의 아픔을 젊은 세대와 함께 나누고픈 노인들의 마음으로 두 편의 영화를 제작해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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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복(71) 동화구연 교실 회장 인터뷰

“아산노인종합복지관은 지역 노인들의 파라다이스”

김경복(71) 동화구연 교실 회장 인터뷰

-아산노인종합복지관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긴 사회생활을 마치고 노년기를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지난 2007년 들어왔다. 처음에는 늦은 나이에 뭔가를 배운다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리 열심히 참여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지나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니 빠질 수가 없더라 그래서 요즘은 결석도 거의 안하고 참여하고 있다.”

-동화구연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젊었을 때부터 나는 남들보다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인복지관에서 내 감수성과 잘 맞는 프로그램이 뭐가 있나 찾아보던 중 지인의 소개로 동화구연 교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땐 남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자신 있게 발표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이 모두 동화를 좋아하다 보니 금새 적응 되더라. 2년이 넘은 지금은 너무 재미있고 매일 밤 수업시간이 기다려져 밤잠을 설렌다.”

-동화구연이 어떤 점이 재미있고 좋았는지.

 “우선 수업시간마다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회원들과 함께 동화 속의 한 장면을 재연할 때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이 돼 있다. 지난해 동화구연 자격증을 취득해 지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도 가르쳐 주는 봉사를 펼친다. 즐겁게 배워서 남을 알려주고 자격증도 따 이 방면에 전문가가 되다 보니 자긍심도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화구연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 문득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동화구연을 배워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현실세계가 아닌 동화에서 느끼는 낭만을 누려보는 것도 늦은 나이에 즐겁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곳에서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일단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다.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듣고 쉬는 시간에는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같은 지역 사람들이다 보니 그만큼 공감대도 많이 형성되고 많은 부분에 있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의무적으로 나오다 보니 더 늙어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만약 사회생활을 은퇴하고 집에만 있다면 얼마나 무료하겠는가. 하지만 ‘여기는 나의 학교고 직장이다’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나오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늙어가는 것도 모르겠다. 이대로 수 십년은 젊게 살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도 있다.”

-지역에 있는 다른 어르신께 복지관을 자랑한다면.

 “복지관은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삶의 터전이며, 제 2의 인생을 깨우치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고 나눔의 기쁨도 얻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고 싶다. 다른 노인들도 이곳에서 제 2의 인생을 설계하길 바란다. 나이가 들어서 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쓰지 않는다면 치매의 위험성도 훨씬 높다고 한다. 이곳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또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어떤 분들은 집에 있기가 눈치 보여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인근 공원에서 보내기도 한다는데 그런 시간을 이곳에 투자한다면 훨씬 값지다고 생각된다. 이곳은 일반 노인들에게 밥을 1000원에 제공하고 미용실 이용도 2000원이면 해결된다. 노인들을 위한 파라다이스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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