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의 전쟁사로 본 투자전략] 지고 있는 싸움에 ‘몰빵’하는 어리석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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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1942년 전까지 일본군 수뇌부 중에서 태평양의 남쪽 솔로몬 제도에 있는 과달카날이라는 섬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쓸모없는 작은 섬에 건설된 비행장을 탈환하기 위해 일본군은 1942년 8월부터 6개월 동안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 지상병력과 해군·공군을 투입했다. 그러나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만 입은 채 허무하게 발을 뺐다.

 미 해병대가 처음 과달카날에 상륙해 일본군 수비대를 압도했을 때 일본군의 손실은 얼마 되지 않는 전투 병력과 노무자, 짓다 만 비행장이 전부였다. 이때 일본군이 발을 뺐다면 이후 6개월간의 격전으로 발생한 2만5000여 명의 병력 손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군은 육상 전투뿐만 아니라 하늘과 바다에서도 막대한 규모의 손실을 입어 과달카날 전투에서 38척의 각종 선박과 700여 대에 이르는 항공기를 잃었다.

 미군은 처음부터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전투에 임했다. 먼저 섬에 도착해 착실하게 방어진지를 구축했고 비행장을 선점해 주변의 제공권도 장악했다. 반면 미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선박으로 병력을 보내야 했던 일본군은 병력 투입에 제약이 많았다. 병력을 섬에 성공적으로 투입했더라도 중화기와 탄약뿐 아니라 보급 물자까지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수많은 병력이 섬에서 굶어 죽는 판이었다.

 상황이 이처럼 불리했음에도 일본군이 섬의 탈환에 집착한 것은 ‘이 정도의 손실을 입은 뒤 물러서면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지휘관의 ‘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변 바다와 하늘을 미국이 장악한 상황에서 지휘부가 고집을 부린다고 전투가 유리하게 전개될 리 만무했다. 마지막 부대가 섬을 떠날 때도 일본군은 ‘철수’가 아닌 ‘전선 정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최후의 순간에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주식투자에서 ‘손절매(損切賣)’만큼 어려운 기법은 없다고 한다. 이미 발생한 손실을 확정하고 발을 뺀다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실적이 나빠지고 기술적으로도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해 보이는 수준까지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기다렸는데 여기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망가진’ 종목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그래도 주가가 안 오르면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수준까지 발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쓸데없이 희생만 키우는 오기’의 표본이라고 말할 만하다.

 이기는 싸움에 ‘몰빵’을 해도 쉽지 않은 형국에서 지고 있는 싸움에 ‘몰빵’을 하니 돌아오는 것은 불필요한 희생뿐이다. 기업의 앞길이 보이지 않는 종목을 가지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생각하는 심리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밑질 수밖에 없는 장사라면 재빨리 손을 털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큰 손실로 발전할 수 있는 실수는 재빨리 인정할수록 이로운 법이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엄상담1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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