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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돈 4조6000억 빼내 ‘로또식 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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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연호 회장

대검 중수부 조사 결과 부산저축은행 그룹은 4조5900억원이 넘는 고객예금을 빼돌려 120개의 위장법인을 세운 뒤 ‘로또식 투기’에 나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서민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자금을 중개하는 저축은행 본연의 임무는 철저하게 무시됐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문에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실체는 전국 최대 규모 시행사”라고 못박았다.

 2일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구속 기소된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61)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와 경영진, 감사들의 불법 대출은 2006년 5월부터 영업정지가 내려지기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서민들이 예금한 7조원 중 4조5942억원으로 특수목적법인(SPC) 120개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부동산은 물론 아파트 건설업, 골프장 사업, 납골당 운영, 선박투자 사업 등에 마구잡이로 손댔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해외 건설사업에도 손을 대 캄보디아 신도시 건설사업과 인도 발리 리조트 개발 사업에 투자했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투자나 제조업 진출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자연히 불법·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처음 SPC를 설립할 때는 임직원 지인들의 차명을 이용했지만 수법이 점점 대담해지면서 컨설팅 회사나 공인회계사를 가담시켰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에겐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였다. SPC 사업이 실패하면 예금자들에게 손해를 떠넘기면 되고, 성공하면 이익만 챙기면 됐기 때문이다.

 대주주들은 SPC 사업자금 마련과정에서 월 50만~200만원을 주고 대표이사 명의를 빌렸다. 명의를 빌려준 가짜 임원들에게 4대 보험료를 지급하고 사무실 임대료 등 법인 운영비로 매월 1000만원을 사용하는 등 연간 130억~150억원을 썼다. 매일 오전 부산저축은행에서 열렸던 임원회의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고 수사팀은 말했다.

 박 회장과 김양(59) 그룹 부회장, 김민영(65) 대표, 강성우(60) 감사 등 구속 기소된 그룹 핵심 4인방이 불법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특정사업을 담보로 대출해주는 방식) 대출의 액수는 물론, 어떤 방식으로 할지도 결정했다. 직영 SPC에 대출한 자금이 인허가 지연 등으로 부실 채권이 되자 임직원 친·인척 명의로 무담보 신용대출을 일으켜 대출자금이 7500억원에 달했다. 이 돈은 기존 대출금에 대한 돌려막기에 사용됐다. 이 임원회의에는 금감원 국장 출신 감사들도 참석했다. 감사들이 대주주 경영진의 부정행위를 눈감아주는 걸 넘어서 직접 범죄에 가담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SPC 120개 사업 가운데 99개는 사업진행이 표류 중인 상태고 21개(17.5%)만 진행 중이다. 검찰은 “SPC 120개 사업은 부산저축은행 영업 1, 2, 3, 4팀 직원 16명이 관리·담당했다. 사업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었다”고 말했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은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을 피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통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높게 조작했다. 예금자·투자자들이 조작된 BIS 비율을 보고 우량 저축은행으로 착각해 투자했다가 떼인 돈이 1000억원이다.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영업정지 직전에 극에 달했다 . 검찰은 박 회장 등 대주주들이 영업정지를 예상하고 영업정지 며칠 전부터 예금을 인출하거나 재산을 은닉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영업정지 일주일 전인 2월 10일께 부인 명의의 정기예금 1억7100만원을 중도 해지·출금했고 부산저축은행에서 1억1500만원, 중앙부산저축은행에서 5600만원을 출금했다. 또 영업정지 다음 날 자신 명의의 임야를 친구 명의로 10억원의 근저당 설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서 서민 3만143명이 2882억원을 떼이게 됐다고 말했다.

임현주 기자

◆특수목적법인(SPC)=금융기관에서 발행한 부실 채권을 매각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립된 특수목적회사로 채권 매각과 원리금 상환이 끝나면 자동으로 없어지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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