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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지조 없는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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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1996년 서울 종로 선거에서 이명박·이종찬·노무현 후보가 싸웠다. 결과는 4만, 3만7000, 1만7000표였다. 이 선거는 세계 정치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진기록이다. 대통령을 주고받을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른 채 한 지역구에서 대결한 것이다. 미국에 대통령이 43명이나 있었지만 같은 지역구에서 싸운 사람은 없다. 이명박과 노무현은 주역(周易)에 남을 운명이다.

 노무현은 매우 부실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에게 주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 ‘생즉사 사즉생(生即死 死即生)’의 지조와 소신이다. 노무현은 질 것을 알면서도 부산에 세 번 출마했다. 2000년엔 종로 국회의원이었지만 당의 경남 책임자를 맡자 다시 부산으로 가기도 했다. 이런 우직한 소신이 없었다면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선택할 때도 우직했다. 나는 그가 과(過) 8이요 공(功) 2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우직성만큼은 그걸 초월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지도자의 지조와 소신이 가장 도전을 받는 것이 선거다. 승리를 위해선 지조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지는 한이 있어도 원칙대로 갈 것인가. 이 선택에서 정권의 내공과 철학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이명박 정권은 남루한 철학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지조에 관한 한 말라버린 우물이었다. ‘생즉사’의 원리대로 졌고, 모든 게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

 선거 50일 전인 지난 3월 7일 나는 ‘엄기영과 한나라당…탈선의 탱고’라는 칼럼을 썼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은 광우병 오보 사태에 최종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책임을 회피했다. 회사로부터 매달 1000만원을 받으면서도 한나라당을 기웃거려 공영방송의 정신과 조직을 훼손했다. 이 정권이 그런 사람을 영입하는 것은 순리에 대한 난행(亂行)이라고 나는 비판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썼다. “한나라당과 엄 전 사장이 한 이불 속에 들어간 것은 한국 사회의 정신사(精神史)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중략)…지사 자리 하나에 정권의 가치를 팔아버리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신을 훼손하는 어느 유명한 지식인과 표 몇 장에 정신이 구제역에 걸려버린 집권당…그들이 추어대는 탈선의 탱고에 이 봄이 어지럽다.”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내에선 ‘엄기영 영입 불가피론’이 대세였다고 한다. 광우병 파동 책임 등 문제가 많지만 엄기영이 민주당으로 가면 선거는 필패(必敗)라는 거였다. 참모들이나 당이 소리(小利)에 원칙을 버려도 대통령이 중심을 잡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설사 선거에서 져도 “이 정권이 꼿꼿이 앉아서 죽었다”는 평판은 들었을 것이다.

 정권은 이미 소신과 원칙을 저버렸던 경험을 여럿 가지고 있다. 광우병 파동 때는 폭도들에게 수도 한복판을 내주고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나 올랐다. 연평도 사태 때는 국민의 민가가 불바다가 되는 걸 생중계로 보면서도 전투기 폭격 한번 해보질 못했다.

 이 정권은 결기가 부족하다. 연평도 사태 직후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이 청와대 참모진을 가리켜 ‘개XX들’이라고 공개적으로 욕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사정을 들어보면 참모들이 그런 욕을 먹을 정도로 잘못하진 않은 것 같다. 설사 실수가 있었어도 국가원수가 지휘하는 청와대를 향해 그런 육두문자를 쓴 것은 청와대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었다. 그렇다면 참모 중에 한 명이라도 분연히 일어나 “어떻게 여당 중진이 국가원수의 통치부를 향해 그런 욕을 할 수 있느냐”고 싸웠어야 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이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온 보수·우파·주류 세력의 중심지대다. 그런데 그런 정권이 져도 가치 없게 지고 있다. 밀려도 창피하게 밀리고 있다. 계속 지조와 철학을 내동댕이치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패퇴할 것이다. 정권의 패잔병들은 보온병처럼 생긴 탄피의 더미 속에서 지난 세월이나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