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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채용시험에 중국어 가산점 주는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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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기본, 중국어는 필수.”
취업시장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어를 잘해야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대졸자 취업난이 이만저만 아닌 데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껏 커진 ‘차이나 파워’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한국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하다. 수출 분야만 따져도 지난해 25.1%(1168억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 소비자물가가 1% 오르면 우리나라 생산자물가는 0.11% 오른다고 한다. 오죽하면 차이나플레이션(China+In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일반화됐을까.

중국의 힘은 군사·외교 분야에서 더 실감난다. 천안함·연평도 이후 더더욱 그렇다. 김정일 북한체제를 지지하는 중국 지도부는 요즘 6자회담 재개를 밀어붙이고 있다. 북측의 선(先)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미·일로부터 북한체제 보장과 대북 경제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북한의 3대 세습체제를 후견할 기세다. 그래도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지중(知中)·용중(用中)의 시작은 중국어 능력이다. 현지 언어에 능통하고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많아질 때 외교든 사업이든 물 흐르듯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한국 외교사에 먹칠을 한 ‘상하이 스캔들’ 역시 따지고 보면 중국을 잘 모르는 비(非)전문가에게 대중 외교를 맡겨 생긴 불상사다. 부끄러워 말을 못해 그렇지 중국 대륙에 갔다가 빈털터리로 돌아온 사업가들의 실패담은 무수히 많다.

불길한 조짐은 일찍부터 있었다. 주요 대학에선 중문과 인기가 떨어지고 대기업에서조차 중국어 푸대접 현상이 두드러졌다. 연세대 김현철(중문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 중시 정책이 강화된 탓인지 중문과 학생조차 다른 전공을 기웃거린다”고 토로했다. 중국 사업에 적극적인 대기업도 ‘중국어 무장(武裝)’에는 소홀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중국 땅에, 이제 막 중국어 걸음마를 뗀 직원을 보낸 곳도 적잖다. 용감하다 못해 무모했다.

모(某)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중국 주재원 파견에 앞서 3∼6개월의 단기 연수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어 전공자에게 경영 실무를, 경영 실무자에게 중국어를 교육시키는 체계적인 중국 전문가 양성 시스템이 없다는 고백이다. 심지어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교육 담당자는 “정 필요하면 통역을 붙여주면 된다”고 했다. 대입 수능 시험에서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하는 학생 숫자도 줄었다. 더 좋은 점수를 따려고 아랍어를 선택하는 학생이 40%를 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런 분위기에 일격을 가하듯 며칠 전 삼성그룹이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올 9월부터 중국어 특기자에게 최고 5%까지 가산점(500점 만점에 25점)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중 수교 이후 가히 한 획을 그을 사건이다. 한마디로 ‘삼성맨’이 되려면 중국어를 공부하라는 메시지다. 90년대 후반 삼성은 토익(TOEIC)을 영어 능력 평가기준으로 채택한 적이 있다. 삼성은 진작 중국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선언했다. 올 들어 비즈니스 중국어 시험(BCT)을 그룹 내부의 중국어 평가기준으로 채택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책상머리에서 문법·독해만 공부하지 말고 생산현장과 거래처에서 써먹을 실력을 기르라는 얘기다.

국제정치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조지 프리드먼은 자신의 저서 『100년 후(The next 100 years)』를 통해 “2020년께 경제발전 속도가 떨어지면 중국의 정치·사회불안이 격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21세기 말 터키·멕시코·폴란드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상을 붙여서다.

하지만 프리드먼처럼 중국 체제에 극히 비판적인 몇몇 학자를 빼놓고 ‘중국·미국이 주도할 G2 시대의 시나리오에 반대하는 학자는 별로 없다. 막대한 재정적자의 늪에 빠진 미국의 반대편에 외환보유액만 3조 달러를 넘는 중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를 앞세운 중국의 오성홍기는 남미를 가든 중동·아프리카를 가든 거침없이 휘날린다. 최근 카메룬에서 온 한국 여성 사업가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국 사람을 보면 인해전술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중국은 이제 생산기지가 아니라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춘 경제대국이다. 중국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손자병법에서 “적과 나를 모두 잘 알아야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謀攻編)고 말한 것처럼 중국을 모르고선 ‘글로벌 코리아’는 성공할 수 없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승중(勝中)의 첫걸음은 바로 중국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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