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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실수에 발목, 예술성은 여전히 최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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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우아한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안도 미키에게 밀려 2년 만의 세계선수권 탈환에는 실패했다.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아쉬운 2등이다. 하지만 올시즌 화두로 내세웠던 예술성만큼은 세계 최고였다. ‘피겨 퀸’ 김연아(21·고려대)가 30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아이스팰리스메가스포츠 빙상장에서 열린 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술점수 61.72점, 예술점수 66.87점을 얻어 총점 128.59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받은 65.91점을 더해 총점 194.5점을 받은 김연아는 195.79점을 받은 안도 미키에게 1.29점 뒤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안도에게 0.33점 앞선 1위였으나, 프리에서 1.62점 뒤졌다. 김연아는 시상식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김연아는 전날 실수했던 첫 점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 점프는 완벽하게 뛰었다. 하지만 다음 수행 요소인 트리플 살코-더블 토 루프 점프 도중 뒷 점프를 싱글(한 바퀴) 처리했고, 이어진 트리플 플립 점프도 한 바퀴만 돌았다. 그는 “긴장을 해 트리플 살코-더블 토 루프 점프에서 실수를 했고,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플립 점프도 주춤했다”고 했다. 연기 초반부 실수 후 평정심을 되찾은 김연아는 이어진 연기는 완벽하게 풀어나갔다. 스핀은 낮고 아름다웠고, 스텝은 우아했다. 특히 아리랑이 흐르며 펼쳐진 스파이럴은 이날 경기의 백미. 김연아 특유의 예술성이 돋보인 무대였다.

이를 반영하듯, 김연아는 이날 경기에 나선 24명 가운데 최고 예술점을 기록했다. 김연아의 예술 점수는 금메달을 딴 안도의 예술점수 64.46점보다 무려 2.41점이나 높다. 보통 실수가 나오면 연기 흐름이 이어지지 않아 예술성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두 차례 실수를 범한 김연아의 예술점수는 이렇다 할 실수가 없었던 안도의 점수를 제쳤다.

피겨 퀸 김연아가 감정을 풀어내는 표정과 몸짓은 남다르다. 문화평론가 한정호씨는 “김연아는 타고난 예술가다. 발레리나 가운데 ‘김연아는 어쩌면 마임이 저토록 풍부할 수 있는가’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발레뿐 아니라 김연아는 어떤 종류의 표현에도 능숙하다”고 했다.

연기는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속설은 김연아를 비켜간다. 인생의 경험을 쌓은 시간보다 은반 위에 갇혀 산 시간이 훨씬 길었으나, 그는 은반 위 최고의 배우다. 어떤 작품도 예술로 승화하는 김연아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주니어 시절 김연아는 ‘감정 처리가 미숙하다.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김연아는 표정이 풍부한 선수가 아니었다. 평상시에도 일관된 굳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안무가 윌슨을 만나면서 김연아의 피겨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윌슨은 재능은 있지만 무뚝뚝했던 김연아에게 감정을 찾아줬다. 김연아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훈련하던 시절, 그는 틈나는 대로 김연아를 데리고 공연을 보러 다녔다. 비극·희극, 클래식과 록 스타의 공연을 망라해 어린 김연아에게 간접 경험을 쌓게 해줬다. 그는 또 작은 링크 안이 인생의 전부였던 김연아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음식을 함께 먹으러 다니면서 10대 소녀의 풋풋한 감성을 일깨웠다. 김연아는 “윌슨을 만난 뒤 나는 내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안무가로서 윌슨은 더욱 창조적이다. 김연아의 유년 시절 코치인 신혜숙씨는 “윌슨의 안무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포인트가 있다.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고, 상당히 감동적”이라고 했다.
한 피겨 코치는 “윌슨은 김연아의 성장에 딱 맞는 곡을 귀신같이 선곡해 기가 막힌 안무를 만들어 낸다. 열여섯 살 김연아에게는 발랄한 박쥐 서곡을, 한 단계 성장한 김연아에게는 전 시즌과 확 바뀐 분위기의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를 골라줬다. 스무 살이 된 김연아에게 본드걸을 연기하게 했고, 연기에 물이 오르자 ‘지젤’을 맡겼다”며 “김연아의 성장에 윌슨은 최고의 조력자”라고 덧붙였다.

모스크바=온누리 기자 nur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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