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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60주년' 독일 신나치주의자들 목소리 높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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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극우파 정당인 독일 민족민주당(NPD) 지지자들이 지난 8일 베를린에서 나치시대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60년 전 이날 나치독일은 연합국에 항복했다. [베를린 AP=연합]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은 독일에서 극우주의자들의 활동이 한층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이들의 대규모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 독일의 대표적 극우정당인 민족민주당(NPD)의 우도 포익트(53.사진) 당수를 시위 현장에서 만났다. 독일에는 우파 정당이 세 개 있다. NPD를 중심으로 연합, 내년 총선에 참여하려 한다. NPD의 당원은 6000여 명에 이른다. 포익트 당수는 16세 때인 1968년부터 NPD에서 활동, 공안당국이 가장 경계하는 극우주의자다. 공군 장교로 예편한 그는 뮌헨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은 지식인이다. 포익트 당수는 "한국 기자가 찾아오기는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오늘 시위를 한 이유는.

"독일인들만 잘못했다는 죄의식을 심어 주는 문화를 끝장내야 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 나라마다 역사적인 잘못이 있다. 독일이 60년간 죄의식에 시달렸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지난 8일은 독일이 나치로부터 해방된 종전 60주년인데.

"해방의 날이 아니라 점령된 날이다. 해방이라고 부르는 자는 부역자다. 전후 1700만 명의 독일인이 고향에서 쫓겨났고 재산을 빼앗겼다."

-NPD가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이유는.

"외국인이 독일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독일은 수출국가다. 외국인의 투자와 진출이 중요한데.

"우리는 세계화에 반대한다. 외국인 투자자에 앞서 독일인 투자자를 돌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아돌프 히틀러를 위대한 정치인으로 존경했다고 하던데.

"우리는 과거 나치 범죄를 본받으려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모두 히틀러를 매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NPD의 청년 조직은 해마다 히틀러의 측근인 루돌프 헤스를 추모하고 있다.

"청년 당원들은 정체성을 보존할 권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헤스를 찾아낸 것은 긍정적인 사례다. 헤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죄됐다."

-정치권에서 NPD를 금지시키려는 논의가 다시 일고 있다.

"그런 시도는 좌절될 것이다. 우리 당의 활동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오히려 당의 홍보에 이롭다. 돈이 들지 않는 광고가 된다."

-NPD가 작센주 의회에서 나치 희생자에 대한 추도 묵념을 거부한 이유는.

"우리는 희생자 추모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만을 일방적으로 추모하자는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신나치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다.

"신나치라고 부르는 악의적인 시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 당은 독일 민족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모든 민족주의 단체와 세력을 모으고 있다."

-NPD의 젊은 행동대원들이 매우 폭력적이란 주장도 있다.

"주장이 과격하지만 폭력적이지 않다. 좌익세력들의 폭력적인 당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행동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대략 2000명 선이다."

-NPD는 단지 독일인만을 위한 당인가.

"물론이다. 우리 당헌에는 독일인만이 당원이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부모의 한쪽이 외국 출신인 독일 국적자는.

"독일인 부모를 둔 사람만이 독일인이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 신나치 시위현장 가보니 …

지난 8일 오전 11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든 경찰 1만여 명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아 독일 신나치주의자들이 벌인 시위 현장이었다.

장갑차.시위진압차로 4겹이나 둘러쳐진 접근 저지선을 통과하니 건장한 청년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팔에는 극우정당인 'NPD(독일 민족민주당)' 표시가 그려진 완장을 차고 있었다. 취재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언론은 거짓 보도를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광장은 군화를 신고 머리를 빡빡 깎은 '스킨헤드' 청년 3500여 명으로 꽉 차 있었다. 희고 붉은 바탕에 독수리를 그려넣은 깃발이 곳곳에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나치시대 독일 제3제국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서너 대의 차량에서 울려 퍼지는 옛날 군가풍의 노래는 섬뜩한 전쟁터 분위기를 자아냈다. 차량에는 "우리는 종전 60년을 기념할 수 없다" "독일인에게 죄의식을 심어 주는 문화를 걷어치워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단상에서 연사가 "연합군의 폭격 테러로 숨진 수백만의 독일인 희생자와 전선에서 영웅적으로 목숨을 내던진 병사를 추모하자"고 격렬하게 외쳤다.

이들은 시내 도심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건너편에는 6000여 명의 또 다른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었다. 극우주의를 완력으로 막겠다는 좌파행동대들이었다. 경찰을 사이에 두고 양측의 야유와 고함이 오갔다.

그때 경찰서장이 분주하게 양측을 오가며 시위대 수뇌부와 대화했다. 다음날 독일 언론들은 "극우시위가 평화적으로 끝난 것은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으로 사태를 풀어간 베를린 경찰의 인내와 관용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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