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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스리그 4강 1차전 -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최영미의 관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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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시인·본지 객원기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50)씨가 중앙일보 객원기자로 위촉됐다. 최 시인은 “축구 보느라 시집 출간을 1년이나 늦췄다’는 축구 매니어다. 지난 2월에는 훌쩍 유럽으로 떠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청용(볼턴)·손흥민(함부르크)·정대세(보훔) 등을 만났다. 이 여행의 과정을 담아 중앙일보에 게재한 최 시인의 에세이는 충만한 감성과 통찰력으로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최 시인은 앞으로 유럽 축구와 K-리그 등 국내외 축구를 취재하고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다.

이것은 두 도시의 이야기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축구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피레네 산맥보다 더 높은 장벽이 시민들의 가슴을 가로막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스페인 대표팀이 국제경기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오래된 지역 감정, 출신이 다른 선수들의 갈등이 주된 이유였다. 같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도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에 패스를 하지 않으려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바르셀로나에서 내가 만난 어떤 젊은 카탈란 남자는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스페인을 이겨 미안하다”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너희가 스페인을 꺾어줘서 나는 기뻤다.” 자신의 나라가 졌는데 축배를 들었다니. 두 도시 사이의 경쟁심에 놀랄 수밖에. 그러나 이 모든 건 지난 이야기. 2010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지역감정이 얼마간 해소되었고, 위기 속에 단결된 선수들이 사상 최초의 월드컵 우승을 국민에게 선물했다. 트로피를 함께 들어올린 뒤에, 카시야스와 푸욜은 각각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두 남자의 이야기.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다. 마드리드의 사령탑인 조제 모리뉴와 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는 1996년에서 2000년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였다. FC 바르셀로나에 부임한 외국인 감독 보비 롭슨, 그리고 루이스 반 갈 밑에서 모리뉴는 통역관, 과르디올라는 선수로 뛰었다. 2010년 봄, 모리뉴가 이끄는 인터밀란이 바르셀로나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며 두 남자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미 챔스리그 우승컵을 두 번 들어올린 모리뉴, 그리고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챔스리그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과르디올라. 누가 더 뛰어난 감독인가. 40대 후반의 잘생긴 두 남자의 머리싸움 못지않게, 화려한 말과 옷차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여성 축구팬들의 기쁨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운동경기. 단순한 게임 그 이상의 감정이 지배하는 맞대결,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충돌을 축구팬들은 기다린다. 올해는 4월 17일부터 5월 4일까지 리그와 컵대회 그리고 챔스 4강전 두 경기, 합해서 네 번이나 두 팀이 맞붙는다. 축구팬들에겐 너무도 행복한 요즘이지만 18일 동안 네 번이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선수나 감독에겐 잔인한 사월이리라.

 드디어 4월 28일 오전 3시45분(한국시간)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반에 양쪽 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더 편안하게 공을 운반했다. 같은 유스팀에 소속돼 공을 찬 선수가 많은 바르샤가 더 호흡이 잘 맞는 건 당연하다. 눈이 마주치는 100분의 1초의 차이가 패스의 성공을 결정한다. 마드리드의 중원을 책임지는 사비 알론소의 얼굴에 흐르는 피곤한 땀을 보며 나는 바르샤의 승리를 점쳤다. 후반 61분 페페의 레드카드에 항의하다 모리뉴가 퇴장당하는 순간, 경기는 끝났다. 2대0으로 홈에서 패한 뒤 심판의 판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는 말했다. “가끔 나는 이런 세계에 사는 게 역겹다.” 그처럼 강하고 잘난 남자도 이 세상이 역겨워질 때가 있다니. 아시아의 변방에서 쪼가리 글로 연명하는 어느 작가에겐 위로가 되리.

최영미 시인·중앙일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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