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은 ‘천막당사’ 정신으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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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천당 아래 분당’이라 한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꼭 와닿는 얘기였다. 언제나 이길 수 있는 텃밭이니, 정치인 입장에선 천당이 따로 없다. 4·27 재·보선으로 얘기가 달라졌다. 한나라당이 패배할 수 있는 지옥으로 바뀌었다. 다음엔 비슷한 다른 수도권 텃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악몽에 한나라당이 혼돈에 빠져들었다.

 이미 사퇴를 선언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어제 마지막 회의에서도 고성(高聲)의 책임 공방을 벌였다. 영락없는 ‘봉숭아 학당’이다. 당에선 비상대책위 구성, 새 원내대표 선출,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자의 모색, 당·정·청 관계 정비 등을 놓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선주자를 비롯한 중진은 그들대로, 당장 내년 총선의 불똥이 발등에 떨어진 수도권 의원들은 그들대로 살길을 찾기에 바쁘다.

 정치의 중심인 공당(公黨), 특히 국정을 이끌어 가야 할 중심인 집권당이 이렇게 방황해선 안 된다.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民心)을 잘 읽으면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보수 유권자들이 돌아선 이유는 한나라당의 행태에 실망해서다. 유권자들이 무서워졌다. 한나라당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민심을 되돌릴 혁신의 최우선 과제는 인적(人的)·제도적 쇄신이다. 인적 쇄신은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출발해야 한다. 새 지도부는 국민에게 새로운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어야 한다. 외부에서 영입하든, 당내에서 고르든 개혁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친이(親李)계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려해 ‘편의적인’ 인물을 내세우면 당의 지도력 재건은 아예 물 건너 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딴나라당’이니 ‘두 나라당’이니 하는 여론의 조롱을 받지 않으려면 당내 분열을 추스를 수 있는 인물이 나서야 한다.

 제도적 쇄신의 핵심은 공천개혁이다. 한나라당은 이번에 분당에서 극심한 공천 혼선을 보였다. 강원도에선 순리에 맞지 않는 후보를 공천함으로써 패배의 무덤을 팠다. 공천개혁안은 이미 마련돼 있다. 새로운 지도부가 과감한 개혁안을 수용해야 한다. 개혁의 핵심은 상향식 공천이다. 이번 재·보선의 실패를 되새겨보면 알 수 있다. 당 지도부가 밀실에서 결정하는 하향식 공천으론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당원이나 유권자들이 직접 후보를 선택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과감한 공천개혁으로 진정한 정치개혁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의 의지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여당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집권당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기득권에 안주해왔기에 ‘웰빙 정당’이라 불릴 정도였다. 집권당의 독선과 무기력 사이에서 민심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워야 진정한 도약이 가능하다. 문제는 얼마나 뼈아픈 반성을 하고 얼마나 비장한 희생을 각오하느냐에 달렸다. 한나라당은 오늘의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2004년 ‘천막당사’의 정신으로 돌아가 바닥부터 새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