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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실패하며 배우는 노무라의 해외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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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용아
맥킨지 파트너

시가총액 기준으로 글로벌 순위 80위 밖이고, 아시아에서도 상위 10위 안에 못 드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의 현주소다. 왜 이리 초라할까. 결론적으로 변화를 꺼렸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생각할 때 좀 더 보수적이고 엄격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금융업의 본질은 계산된 리스크 아래서 비즈니스를 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적절한 리스크 애퍼타이트(risk appetite)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 금융사들이 국내의 탄탄한 입지와 규모를 기반으로 해외진출을 해야 한다는 얘기는 외환위기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으나 막상 위기가 터지면서 쑥 들어가버렸다. 축적된 노하우, 고품질 고객 서비스, 인터넷뱅킹 등 여러 선진 수준의 역량과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국 금융권에 귀감이 될 만한 곳이 바로 이웃에 있다. 다름 아닌 일본계 은행인 노무라다. 노무라가 진정한 글로벌 투자은행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전정신만큼은 이미 글로벌 수준이다. 글로벌 은행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초석은 다져놓은 셈이다. 보수적인 일본계 노무라가 최근 최고재무관리자(CFO) 자리에 최초로 여성임원인 나카가와 준코(中川順子)를 임명하고 외국인인 제세 바탈(Jesse Batthal)을 넘버3(부사장)에 앉힌 것이 좋은 예다. 패러다임과 관습을 깨야 성장의 촉매가 되는 ‘틀에 박히지 않은(out of the box)’ 아이디어가 나온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노무라가 미국 시장에서 지난 2분기 동안 이익을 내고 아시아·유럽에서는 아직 큰 재미를 보고 있지 못한 시점에서 현행 기조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해야만 알맞은 모델을 찾고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 노무라의 미국 지사는 지난 1년간 스태프 숫자를 세 배 가까이 늘렸다고 한다. 다른 글로벌 은행과 비교해도 일할 만하다는 인식이 선수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이것이 곧 지속적인 금융 노하우의 유입으로 연결된다.

  이와 유사한 예로 1985년 세계 135위에 그쳤던 스페인의 방코 산탄데르(Banco Santander)은행이 지난 20여 년 사이에 ‘세계 톱 10’으로 도약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컨소시엄을 통해 네덜란드계 글로벌 은행인 ABN암로, 영국의 얼라이언스 앤드 레스터(Alliance and Leicester) 등의 인수를 감행해 유럽 내 지위를 더욱 확고히 했다. 에밀리오 보틴(Emilio Botin) 회장은 초반에 수행한 인수합병의 3분의 2는 단순한 단기적 재무관점에선 실패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교훈과 경험을 얻었기에 오히려 성공한 딜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과 이익의 창출에 한계가 분명하다. 국내 일반은행의 명목 순이자 마진은 2005년 3.08%를 기록한 이래 계속 하락해 2009년 말 2.15%에 불과하다. 이러한 트렌드는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계나 일본계 금융사가 해외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에서 아시아대륙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는 상황에서 신금융 지역에 대한 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항상 외국자본의 지배를 당할까 우려하는 것보다 그 흐름의 한가운데 서는 방법과 이를 활용하고 공존·성장하는 능동적 자세가 시급하다.

김용아 맥킨지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