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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걸핏하면 협박당한다” 포털 “불리하면 빼라는 거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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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최근 인터넷매체인 P경제와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P경제가 지난해 말부터 사흘에 한 번꼴로 사실과 다른 악의적 보도를 30여 차례나 내보냈고 포털들은 해당 기사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주장은 충격적이다. “지난해 10월 A380 비행기 구입 홍보차 외국 현지공장에 견학 갈 때 P경제 기자도 동행했다. 현장에서는 A380이 훌륭한 비행기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데 협찬금이 줄어들자 정반대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P경제는 실제로 ‘대한항공 회장의 선견지명’ ‘대한항공, 명품 항공사 진면목 개봉박두’ 등 A380을 찬양하는 기사를 4건 썼다. 그러나 12월부터는 ‘판단 미스’ ‘치명적 실수’라는 표현을 쓰면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A380 도입을 잘못했다는 기사를 냈다. ‘대한항공, 입사하고 싶지만 오래 못 다닐 회사?’라는 심층진단과 ‘대한항공 담합중독 도무지 끊기 힘든가?’라는 기자수첩 등 노골적 비난 기사도 있었다. 이런 기사들은 포털에 올라갔고, 자극적 제목이어서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물론 언론사는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비판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게 합리적이고 객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냐, 아니면 일종의 보복이냐다.

대한항공은 P경제 측에 기사 삭제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협찬금이 지난해의 절반밖에 안 돼 담당 부장이 섭섭해하고 부정적 기사를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게 대한항공 주장이다.

그러나 P경제 편집국 담당 부장은 “대한항공이 그동안 불리한 기사는 무조건 내려달라고 심하게 간섭해왔다”며 “우리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비판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홍보성 기사도 많이 썼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대한항공이 우리를 광고와 협찬을 안 주면 비판하는 문제 집단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과 P경제 사이의 진실공방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뿐만이 아니다. 최근 대기업들은 일부 인터넷 언론매체에 대해 아우성이다.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광고주협회는 지난달 ‘사이비언론고발센터’를 열었다. 개별 기업들이 보복이 두려워 대응을 못하니 광고주협회가 나서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국내 대기업 광고·홍보담당자 5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일부 인터넷 업체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64%였다.

인터넷매체에 대한 언론중재 건수도 급증했다. 지난해 총 2205건의 조정청구건 중 포털 841건(38.1%), 인터넷 신문 567건(25.7%) 등 인터넷매체가 전체의 63.8%를 차지했다. 중재의 경우 지난해 청구된 총 77건 중 포털이 54건, 인터넷 신문이 12건이었다. 올 4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인터넷 매체는 약 2400개다. 2년 전 1400개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늘었다.

기업들은 포털에 더 큰 불만을 표시한다. 군소 인터넷매체의 횡포는 포털 때문이라는 것이다. 포털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극적이고 감정적 표현이 담긴 기사들을 마구잡이로 올린다는 주장이다. 포털 측 주장은 다르다. 네이버 원윤식 홍보팀장은 “기사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매체가 갖는다”며 “포털이 할 수 있는 건 언론 중재위가 내린 결정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광고 강매나 협찬 강권 등 문제 매체임이 명확하고 제휴 규정을 여러 번 어기면 내부 논의를 거쳐 제휴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포털 측은 또 “기업이 원하는 대로 기사를 삭제하면 비판적인 기사는 살아남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숙명여대 심재웅(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기업활동과 언론자유는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인데 그 두 명제가 충돌하고 있다”며 “인터넷매체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옥석을 가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갑생·이현택 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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