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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로빈슨 데이, 월급 미납 데이 될뻔

미주중앙

입력

다저스 구단주 프랭크 맥코트 부부.

42번.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의 배번으로 지금은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의 영구결번이다. 로빈슨은 LA 다저스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활약한 2루수로 28살 빅리그에 데뷔할 때부터 엄청난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데뷔 첫해에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했고, 1949년에는 MVP와 타격왕에 올랐다. 이후 팀이 월드시리즈에 6번이나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우리 한인들에게도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그는 군복무 중 버스에서 뒷자리에 앉지 않아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등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저항해 1954년 대법원의 인종차별 위헌결정과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 제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47년 4월 15일은 로빈슨이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첫 날. 그래서 4월 15일은 ‘재키 로빈슨 데이.’ 모든 메이저리거 뿐 아니라 주심들도 42번 저지를 입는다. 그런데 지난 15일에 하마터면 ‘재키 로빈슨 데이’가 ‘월급 미납 데이’의 치욕스런 날로 돌변할 뻔했다. 프랭크 맥코트 다저스 구단주는 선수와 직원들의 시즌 첫 월급을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다 폭스사로부터 3000만달러의 융자를 받고 부랴부랴 월급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은 다저스가 맥코트 부부의 이혼소송으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운영권이 넘어가며 만신창이가 됐지만 한때 다저스는 최고의 스포츠 프랜차이즈로 명성을 날렸다. 1973년~1986년까지 14년 연속 메이저리그 최다 관중을 동원했고, 특히 1978년에는 사상 첫 300만 돌파 팀이 됐다. 당시 20개 팀이 200만명도 끌어모으지 못했다.

다저스는 특히, 로빈슨을 기용하는 등 인종의 벽을 허무는 데 개척자 역할을 했다. 최초의 일본인(노모 히데오)과 한국인(박찬호) 메이저리거도 다저스를 통해 탄생됐다. 이외 샌디 쿠팩스, 돈 드라이스데일, 타미 라소다, 커크 깁슨 등 걸출한 스타들을 줄줄이 배출했다. 1977년에 자유계약시장이 열렸을 때도, 다저스는 순수야구를 택했다. 대형스타와의 계약을 피하고 순전히 팜 시스템으로 돌렸다. 효과도 봤다. 1981년에 양키스를 누르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1988년에는 커크 깁슨의 홈런을 앞세워 마지막으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이후 피터 오말리 구단주가 1998년에 다저스를 폭스사에 팔면서 팀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프랭크 맥코트가 폭스로부터 다저스를 4억3000만달러에 매입하면서 다저스는 급기야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됐다. 맥코트는 당시 다운 페이먼트로 불과 900만달러만 냈던 것으로 드러나 매입 첫날부터 ‘빚쟁이 구단주’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맥코트 부부가 다저스를 담보로 계속 융자를 얻으며 호화생활을 누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이혼소송이 결정타였다. 프랭크의 부인이자 팀 CEO였던 제이미 맥코트가 보디가드와 불륜관계에 빠지면서 다저스 구단이 본격적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제이미는 보디가드와 함께 구단경비로 여행을 다닌 것이 발각됐다. 또 제이미는 다저스 구단의 파워를 이용해 정계에 입문, 향후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도 갖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졌다. 2007년에 다저스 PR 담당이었던 찰스 스타인버그는 제이미의 충신이었던 인물. 그가 작성한 ‘프로젝트 제이미(Project Jamie)’라는 7페이지 ‘실천 계획서’가 수면 위에 떠오르며 이 모든 사실이 드러났다.

계획서에는 제이미가 여성과 소수계 할리우드 인맥, 그리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성팬의 표심을 끌어들여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프랭크는 불륜문제 뿐 아니라 여왕처럼 팀내 세력을 뻗쳐 나가는 부인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2009년 9월 그녀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아울러 그는 스타인버그 등 다저스내 ‘제이미파’로 분류된 직원 40명을 무더기로 해고시켰다.

주술사 문제도 ‘뜨거운 감자’였다. 제이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블라디미르 쉬펀트(71)라는 러시아 출신 물리학자겸 주술사를 고용했다. 쉬펀트는 “내가 보낸 에너지로 다저스의 승률이 10~15% 정도 높아질 수 있다”며 제이미를 설득했다. 쉬펀트는 높은 연봉에 보너스로도 수십만 달러를 챙겼다. 그는 보스턴 집에서 3000마일 떨어진 다저구장을 향해 주술을 읊었다 한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제이미가 그의 주술이 효력이 있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는 것이다.

그가 고용된 동안 다저스가 포스트시즌에 세 차례 오른 사실을 상기하며 “2004년에 스티브 핀리가 그랜드 슬램을 쳐서 조 우승을 확정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게 다 쉬펀트가 승리 에너지를 보낸 덕분이다. 내 남편(프랭크)도 그걸 느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프랭크가 피해자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도 ‘프로젝트 고릴라’라는 큰 계획을 세웠는데, 중국인 투자가들과 함께 NFL팀을 LA에 탄생시키고, EPL 축구팀을 사들일 계획이었다. 이와함께 사치스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저스 구단을 보증으로 3억9000만달러의 융자를 받았다. 프랭크는 이를 갚기 위해 향후 8년 동안 다저스 티켓가격을 대폭 상승시킨다는 계획을 은행 쪽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맥코트 부부가 소유한 부동산은 다 합쳐 시가가 7천만 달러. 다저스의 가치는 USA투데이가 21일 보도한 것에 따르면 10배 이상인 8억달러에 달한다. 제이미가 다저스를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이미는 50%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부부 이혼소송비는 이미 가주 사상 최고액인 1900만 달러(시간당 1100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반가운 것은 드디어 다저스가 맥코트 부부의 ‘미친 경영’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비밀, 야망, 불륜, 음모는 다저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저스가 훌륭한 구단주를 엄선, 하루빨리 예전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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