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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일 이어 세계 3번째 개발, 경제효과 3조5000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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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호 16면

선형가속장치(DTL): 지름 54㎝, 길이 7m, 무게 10t짜리 관을 7개 연결해 가속기를 만든다. 붉은색은 구리도금이다. 100마이크로미터() 도금을 해야 하는 초정밀 가공 기술이 필요한데 미국·일본·독일 정도만 가능하다. 양성자는 그 가운데 지름 2㎝ 관을 통과한다. 경주의 70여m 길이의 가속기가 완성되면 끝부분에서 양성자의 속력은 빛의 57% 정도인 초속 17만㎞가 된다.

지난 14일 오전, KTX 신경주역에서 나와 조그만 마을 길을 거쳐 비포장 길을 잠시 달리니 야산 아래 넓은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경주 건천읍 화천리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공사 현장이다. 18만㎡(약 5만8000평) 부지에 터 닦기와 기초공사가 한창이다. 공사 진척도가 가장 빠른 곳은 길이 100m의 양성자가속기가 들어갈 ‘가속기 및 빔 이용 연구동 건물’이다. 바닥 기초공사가 한창이다. 양성자가속기는 암반지대 위에 세운다. 만의 하나 있을지 모를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공사 현장엔 콘크리트 바닥 위로 철근들이 삐죽삐죽 솟아나 있다. 총 3074억원의 예산 규모로 2002년 시작한 공사는 내년 3월에 준공돼야 한다. 2005년 경북대 경제경영연구소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경주 양성자 가속기가 창출할 경제적 가치는 연 3조5000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산업에서 직접 이용되는 가치는 1조4000억원, 간접 파생가치가 2조1000억원이다.

경주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공사현장 르포

공사장 한쪽에 마련된 가건물이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 현장사무소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창고가 나타났다. 양성자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선형가속기(DTL), 빔라인 4극 전자석, 빔창 등이 투명 비닐을 덮어쓰고 있다. 최근 완성된 것도 있지만 상당수가 5~6년 전 만들어진 것들이다. 가속기연구센터 공사 일정보다 먼저 장비가 만들어지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다.

최병호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장은 “공사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양성자가속기와 방폐장 공사를 연계시키다 보니 1차적으로 공사가 늦어졌고, 이후 공사 현장에서 신라시대 대규모 가마터가 나오면서 문화재 발굴조사 때문에 다시 한번 늦어졌다”고 말했다. 올해 예산 확보도 문제다. 당초 계획대로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266억원이 더 필요하다. 이 때문에 양성자가속기 가동은 일러도 예정보다 1년 늦은 2013년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양성자 가속기 개발은 우리나라 과학 수준의 한 단계 도약을 의미한다. 양성자를 강력한 전기장이나 자기장 속에서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켜 큰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이를 다른 원자나 분자에 충돌시키면 새로운 세계가 발견된다. 원자·분자 내부의 원자핵이나 소립자와 충돌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전기적 현상을 해석하면 극미 입자의 구조를 밝힐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물질의 성질을 바꾸고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도 있다.

경주 양성자가속기와 같은 대용량 양성자가속기 개발은 미국ㆍ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벌써 유럽연합(EU)과 중국ㆍ인도 등이 우리나라에 기술 제공을 요청하거나 다양한 분야의 국제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최 단장은 “양성자가속기 개발로 우리나라가 이 분야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고 자평했다.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100메가전자볼트(MeV)-20mA급 대용량 선형(線型)가속기다. 수소 원자핵에서 전자를 떼어낸 양성자 10경(1만조) 개를 70여m 길이의 가속장치를 통해 광속의 57%에 달하는 초속 17만㎞까지 가속할 수 있는 장치다. 이 장치는 2007년부터 대전 원자력연구소에서 시범운영 중인 20MeV급 양성자 가속기와 연결해 완성될 예정이다. 여기에 2단계 사업(2013~2018년)이 이어지면 가속기 길이를 배 이상 늘려 1GeV급으로 변모한다. 100MeV급이 가속기에서 나오는 빔을 이용하는 시설이라면, 1GeV급은 양성자를 가속시킨 뒤 납ㆍ수은 등에 때려 중성자를 발생시키는 파쇄중성자 시설이다.

사업단의 조용섭 박사는 “양성자가속기는 물질 구조에 대한 이해와 기초과학적 연구 뿐 아니라 물질 구조 변경을 통한 신소재 개발, 암 치료 연구 등에도 이용된다”며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20% 정도가 가속기를 기반으로 한 연구 결과로 수상했을 만큼 미시세계의 물리법칙을 규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연구시설”이라고 말했다.

가속기에서 나오는 양성자 빔을 이용하면 KTX 고속철의 핵심 부품인 전력반도체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식물 돌연변이 연구, 우주 항공기술, 에너지 기술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암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를 낸다. 정부는 양성자 가속장치를 개발해 나노ㆍ재료ㆍ정보ㆍ에너지ㆍ환경ㆍ생명ㆍ의료 및 기초과학 등 중요 국가과학기술 발전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방사광·중이온 가속기도
가속기는 양성자가속기 외에도 가속 입자의 종류에 따라 방사광(전자)가속기와 중이온가속기 등이 있다. POSTECH(포스텍)이 1994년 포항 지곡동에 만든 것이 방사광(放射光)가속기다. 최근 부지 선정 문제를 놓고 국론 분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과학비즈니스벨트에 세워지는 것은 중이온가속기다.

포항방사광가속기(PLSㆍPohang Light Source)는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다양한 파장과 광도의 빛을 생산한다. 이 빛을 활용하면 일반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세포와 금속물질의 움직임과 표면구조, 분자구조를 볼 수 있다.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는 길이 165m의 선형가속기와 가속된 전자를 초진공통로에 저장시키는 둘레 280m의 저장링, 방출되는 방사광을 이용해 각종 실험을 하는 여러 종류의 빔 라인으로 구성돼 있다. 1994년 12월 세계 다섯 번째로 제3세대 가속기로 완공됐다.

94년 설치 후 사이언스ㆍ네이처 등의 표지를 장식한 국내 논문들이 여기를 거쳤다. 재료과학과 응집물리, 나노과학·생명과학·광화학 등 기초연구를 할 수 있다.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경제 효과도 뛰어나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신화도 방사광가속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99년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의 높은 불량률 때문에 고민하다 가속기연구소를 찾아와 ‘휴대전화 비파괴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반도체 소자 기준축의 뒤틀림 현상과 납땜 불순물을 찾아냈다. 소자 불량률은 70%에서 10%로 낮췄다. 차세대 리튬 2차전지 음극 신물질, 세계 최초 반도체 표면 분자이식 등도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작품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갈 중이온가속기, ‘한국형 희귀동위원소가속기(KoRIA)’는 기본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용이다. 중이온이란 수소·헬륨보다 무거운 지구상의 모든 원소의 이온을 말한다. 원자핵의 구조, 별의 진화, 우주 생성 초기 상태 연구 등 기초연구에 쓰인다. 이외에도 동식물 돌연변이, 핵자료 생산, 중이온 암치료 연구 등도 할 수 있다. 수소에서 우라늄까지의 다양한 이온과 불안정한 핵종을 고에너지로 가속시켜 다른 원자핵에 충돌을 일으킨 후, 원자핵이나 소립자(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를 관찰하거나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원자핵 물질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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