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학의 시대적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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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지훈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교수

최근 KAIST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놓고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필자도 이 사건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라 여기에 첨언을 하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이름있는 대학을 가서 내가 어디를 졸업했다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개인 브랜드 강화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말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첫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은 사실 교육의 질이 떨어져도 어느 정도 감내가 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다니는 또는 졸업한 학교의 브랜드가 올라갈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랭킹만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의 입장은 다르다. 정말로 좋은 교육을 하는 대학을 원할 것이다.

 어떤 교수들은 자신의 시간을 거의 대부분 연구를 하는 데 소모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은 뒷전이다. 이런 경우에 학생들의 등록금은 결국 교수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연구중심 대학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대학들이 생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러나, 이런 선의의 의도가 왜곡된다는 것이 문제다. 연구성과를 위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으니, 대학들은 지속적으로 연구성과만 강요하고, 교수들은 여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대학이라는 곳 전체의 사회적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교수가 어떤 유명한 논문을 냈다는 것은 뉴스가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좋은 제자들을 길러내는 것이 가치를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효과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대학을 일종의 산업으로 본다면 대학에서는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연구활동에 방점을 찍어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작고했지만, 코넬 대학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칼 세이건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가 관여한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코스모스’와 동명의 책을 사서 탐독하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바깥세상과의 연결을 통해 학생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 분야와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매우 유쾌하고, 자신의 지식을 쉽게 설명하는 기술이 있었으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논문을 쓰고, 연구영역에서도 탁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쌓은 사회적인 가치는 우수한 논문을 많이 낸 교수들의 그것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이제는 쉽게 90세까지 살 것이고, 어쩌면 젊은 친구들은 10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디자인도 해봐야 한다. 무척이나 급한 것 같지만, 뭐든지 건너뛴 것이 있으면 결국 그만큼 가치의 손실이 있는 법이다. 대학 시절 다양한 경험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사회에 대한 고민과 친구들과의 우정, 열정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언제 그 일을 해볼 것인가. 우리는 대학에 대한 사회에서의 가치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의 성지는 너무나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결국 이것은 우리 사회의 부담이다. 갈수록 벽을 높게 치고, 여기에서 양육된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세습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면 어디서 진정한 상생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대학도, 학생들도, 그리고 교수들도 모두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우리의 고등교육 체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혁신이 있어야 한다. 내부혁신이 없다면, 외부에서 새로운 시스템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과 대학에도 개방형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지나친 규제 위주의 정책은 완화하되 사회적 책임은 높일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정지훈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