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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쇠고기 … 독콩나물 … 원자바오 “도덕 붕괴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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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원자바오 총리

신화통신·인민일보·중국중앙방송(CC-TV) 등 중국의 주류 매체들이 이례적으로 “중국의 도덕이 무너졌다”고 개탄하는 논평을 일제히 보도했다. 기업 윤리를 회복하고 도덕 재무장을 하자는 주장도 펼쳤다. 최근 잇따라 터진 충격적인 식품 안전 사건들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위기 진단과 통렬한 비판이 담긴 것이다.

 19일 3개 매체가 ‘도덕 붕괴론’을 거론하면서 의미 있는 논평을 동시에 게재한 것은 최근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의 한 발언이 발단이 됐다. 원 총리는 지난 14일 새로 임명된 국무원 참사 8명과 중앙문사(文史) 연구관 5명을 만난 자리에서 ‘진실을 말하고 실정을 살피라’고 역설했다.

중국 선양에서 적발된 독콩나물.

유해 첨가물 사료로 사육한 돼지고기.

유해 색소로 만든 염색 만두.

 원 총리는 최근 멜라민 분유 파동과 염색 만두 사건 등 잇따른 식품 안전 사건에 대해 “이런 악성 사건들은 진실함의 결핍, 도덕 붕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개탄했다. 이어 “국민의 소양과 도덕성이 향상되지 않으면 진정한 강대국도, 존경받는 국가도 절대로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은 “원 총리의 이번 발언은 어떻게 해야 중국 사회에서 도덕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원 총리는 “범법자들과 부도덕한 사람들이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정치·경제 개혁을 심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인민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며 “현실과 인민의 열망에 맞는 좋은 정책을 만들려면 인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 총리가 도덕 붕괴를 비판하고 주류 언론들이 요란하게 보도할 정도로 최근 중국에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식품 안전 사건이 연쇄적으로 터져나왔다. 중국의 대형 식품 가공기업인 솽후이(雙匯)는 살코기를 늘리기 위해 금지 약물인 클레부테롤을 먹여 키운 돼지고기를 납품받아 가공·유통하다 적발됐다. 인체에 유해한 색소를 사용한 ‘염색 만두’가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버젓이 팔렸다. 그뿐 아니라 유해 조미료를 사용한 가짜 쇠고기, 유황으로 훈제한 생강도 유통됐다. 선양(瀋陽)에서는 화학 첨가제인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해 재배한 콩나물을 유통한 무허가 재배업자 12명이 최근 구속됐다.

 유해 식품 사건이 끊이지 않는 데 대해 원 총리는 기업의 부도덕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근본적인 책임을 진 정부당국의 관리감독에 여전히 구멍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2008년 9월 터진 멜라민 분유 사건 이후 대형 분유 제조업체들은 고용 안정을 이유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유해한 돼지고기를 가공해 온 솽후이는 회장이 몇 차례 공개 사과하는 선에서 사건이 무마되고 있다. 이 때문에 비판적인 성향의 경제관찰보는 단순히 도덕 붕괴론을 넘어 중국식 시장경제 체제에 자성론을 폈다. 신문은 “시장경제를 운용하면서 법 집행이 엄격하지 못하다”며 “잇따른 유해 식품 사건들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기초를 침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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