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극 주인공 최주봉.김성녀씨

중앙일보

입력

'성공의 열쇠는 얼마나 많이 울리느냐죠. 관객들이 극장문을 나설 때 눈물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게 하겠습니다'

악극 < 비 내리는 고모령 >의 주연배우 최주봉씨와 김성녀씨가 공연을 앞두고 밝힌 각오다. 극단 가교(대표 최주봉)는 이 작품을 15일부터 2월 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 비 내리는 고모령 >은 가교가 만든 6번째 악극이다. 1993년 < 번지 없는 주막 >으로 악극을 부활시킨 가교는 < 홍도야 울지 마라 >< 굳세어라 금순아! >< 울고 넘는 박달재 >< 눈물젖은 두만강 > 등을 차례로 선보이며 눈물샘을 자극해 왔다.

악극은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뜨거운 사랑을 받아오다 TV의 등장으로 7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지난 90년대 초 최씨와 김씨 등 가교단원이 악극부활에 나서 지금은 공연 때마다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인기가 있다.

악극의 생명은 펑펑 쏟아지는 눈물. 주인공의 피맺힌 설움과 한을 고단했던 자신의 옛 기억과 겹치다 보면 관객의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이 가득 고이기 마련이다.

그런 탓인지 관객 연령층은 40대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눈물은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힘이 있어요. 일종의 카타르시스입니다. 실컷 눈물을 쏟고 나면 마음이 착해지고 깨끗해짐을 느낄 수 있어요. 그 후련함을 관객들에게 안겨주고자 합니다.'(김성녀)

'특히 남자가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 남자에게도 물론 눈물이 있어요. 무대에서 보면 우는 사람은 여자보다 오히려 남자입니다. 악극은 그들에게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해요.' (최주봉)

이번 < 비 내리는 고모령 >도 관객을 울리는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스토리 자체가 구슬프다. 재호(최주봉)로부터 버림받고 서럽게 살아가는 순애(김성녀)의 삶이 가련하다 못해 처절하다.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며 손녀 순애에게 투정부리는 할아머지(윤문식)와 며느리에게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재호 아버지(양재성)도 순애 가슴에 못을 박곤 해 관객을 안타깝게 한다.

악극이 최근 각광받는 것은 노.장년층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려온 이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잠시 과거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푸근한 안정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최씨와 김씨는 악극이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해마다 꽉꽉 차는 객석이 이를 반증한다. 가교는 해마다 서울과 지방순회 공연에 이어 미국에서 교포들과도 만난다. 교포들은 악극에서 태극기를 보는듯한 감회에 젖곤 한다는 것.

그러나 악극의 장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이들의 뒤를 이을 후진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 젊은 배우들이 악극을 배우겠다고 나서곤 하지만 대부분 힘든 연습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하차한다. < 비 내리는 고모령 >에서도 주인공역을 매끄럽게 소화할 신진이 없어 최씨 등이 무대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20대에서 50대까지를 연기해야 하는데, 이에 합당한 배우가 없었어요. 경험이 없는 탓인지 흘러간 시대와 그 정서를 이들이 감동적으로 표현해주지 못해 안타깝습니다.'(김성녀)

'애써 키워놓은 배우들이 영화나 TV로 떠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배우는 과정의 어려움도 잘 참지 못하는 것같구요. 저희 극단이 이번에 뽑은 15명의 신예들이 훌륭한 배우로 성장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최주봉) [서울=연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