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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원 ‘어둠의 지배자’ 글렌코어, 내달 모습 드러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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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스위스 글렌코어는 세계 자원시장의 큰손이다. 세계 권력자들과 화려한 인맥을 자랑한다. 음습한 뒷거래의 핵심 축이기도 하다. 쿠데타 지원 등으로 악명 높은 곡물 메이저 카길과 쌍벽을 이룬다고 할 만하다. 금융시장에서 닮은꼴은 찾는다면 골드먼삭스를 꼽을 수 있다. 글렌코어 사람들은 철저히 세상의 눈을 피했다. 비공개·비상장을 고수했다.

 이런 글렌코어가 변신을 시도한다. 최고경영자(CEO) 이반 글라센베르그(54)는 “기업공개(IPO)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음지를 벗어나기로 한 셈이다. 대중에겐 지분 20% 정도를 팔 요량이다. 그 가치가 얼마나 될지는 공모가에 달려 있다. 글렌코어는 다음 달 19일 공모가를 결정한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글렌코어가 110억 달러(12조1000억원) 정도를 조달할 수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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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라센베르그가 상장하기로 결정한 곳은 영국 런던과 홍콩이다. 공모 주식 80%는 런던증시에 상장한다. 나머지 20%는 홍콩증시에 배정했다. 국내 펀드 등 투자자들도 매수를 시도해볼 수 있다. 하지만 글렌코어는 차이나 머니와 배후에 있는 중국이라는 자원 블랙홀을 겨냥해 홍콩을 선택했다.

 IPO 결정으로 비밀스러운 정원의 문이 빼꼼히 열렸다. 글렌코어는 상품 트레이딩회사다. 자신들의 자금으로 런던·뉴욕·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곡물과 광물에 베팅한다. 동시에 원유와 광산 회사도 사들인다. “상품 트레이딩회사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광산도 소유하고 있는 ‘자원 트러스트(수직결합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평가했다.

 글렌코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 로스네프트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알루미늄·코발트·발전용 석탄 시장의 20~30%를 쥐락펴락한다(FT 보도).” 곡물·석유·금 시장에선 메이저 플레이어로 꼽힌다. 이 모든 것이 이번 IPO를 통해 주가로 환산될 듯하다.

 “글렌코어 IPO는 골드먼삭스의 1999년 상장처럼 신흥 억만장자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6일 전망했다. 글라센베르그 등 글렌코어 내부자들과 먼저 투자한 세력들이 이번 IPO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는 얘기다. 구체적인 지분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목돈을 챙길 수 있는 후보들은 좀 알려져 있다.

 먼저 “회장인 빌리 스트로토테와 CEO 글라센베르그의 지분 가치는 적어도 10억 달러씩은 될 듯하다”고 FT는 추정했다. 미국 사모펀드 퍼스트리저브와 자산운용사 블랙록, 국부펀드 싱가포르투자공사, 중국 금광회사 지진광산도 한몫 챙길 듯하다. 이들은 글렌코어가 지난해 말 발행한 전환사채(22억 달러)를 사들였다. 이자를 받다가 2014년에 전환권을 행사해 지분을 챙길 수 있다.

 글렌코어 주가 전망이 화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 골드먼삭스가 석유 등 상품시장의 과열을 경고했다. “조만간 조정을 겪을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상품가격 급락이나 조정은 글렌코어 주가에 치명적일 수 있다.

 애초 글렌코어 설립자는 유대계 ‘석유왕’ 마크 리치(77)다. 그는 74년 상품 트레이딩회사 마크리치(글렌코어의 옛 이름)를 세웠다. 이후 인종차별로 교역봉쇄 중인 남아공이나 소련의 권력자들과 뒷거래를 서슴지 않았다. 탈세 혐의로 기소될 듯하자 미국을 떠나 스위스로 망명했다. 93~94년 아연에 베팅했다가 1억7000만 달러를 날렸다. 결국 회사 지분을 ‘제자’인 스트로토테와 글라센베르그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이번 IPO는 그림에 떡인 셈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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