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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린다, 중국 - 일본 틈새 뚫고 아프리카 최대 업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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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아시아에 이어 둘째로 큰 대륙 아프리카는 2000년대 들어 매년 5%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세계 평균(3%대)을 웃돈다.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이다. 원유 매장량 세계 3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인 자원의 보고다. 각국의 경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건설·플랜트 분야는 ‘포스트 중동’으로 떠올랐다. 급성장하는 소비시장이기도 하다.

연간 인구 증가율이 3%, 그중 15세 이하의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이 신흥 경제권으로 뛰어들고 있다. 정정·치안불안, 부패 등의 경제적 리스크 극복이 관건이다.

김진경·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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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크게 두 종류다. 바짝 짧게 자르거나, 레게(가늘게 땋은 것) 스타일이다. 타고난 머릿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억센 데다 안으로 돌돌 말린 곱슬이라, 심하면 두피까지 파고들기도 한다.

 가발업체 ‘린다’는 여기에 주목했다.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패션 가발이 먹힐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린다는 1992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진출해 가발 공장을 세웠다. 유일한 무기는 가발 제조 기술이었다. 이 회사 신모(45) 부장은 “아프리카 여성에겐 가발이 의류만큼 중요했고, 패션가발 제조 기술만큼은 한국이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나이지리아의 가발시장은 양극화돼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값비싼 인모(人毛) 가발, 중국 업체가 화학섬유로 만든 값싼 인조모 가발이었다. 일반 여성은 인모 가발을 구입할 엄두를 못 내 중국업체 제품을 이용했지만, 품질이 너무 낮아 한 번 쓰고 버릴 정도였다.

 린다는 틈새시장을 뚫었다.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해 질 좋은 인조모를 생산했고, 수작업으로 디자인해 완성도를 높였다. 모델도 긴 생머리에서부터 각종 파마머리, 다양한 색깔 등 수십 가지였다. 나이지리아 여성들은 린다 가발에 열광했다. 중국 업체가 만든 가발보다 값은 조금 더 비쌌지만 인모 가발 못지않은 품질에 끌린 것이다.

위기도 있었다. 대부분의 공정을 나이지리아인 직원들이 맡아 했는데, 회사가 한창 성장할 때 이 직원들이 만든 노조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것이다. 협상 끝에 생산성을 올리는 조건으로 급여와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신 부장은 “아프리카에서도 노사 갈등이 문제다. 현지인들이 사업 성공의 파트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린다는 현재 아프리카 시장 점유율 70%에 직원 1만여 명을 거느린 아프리카 최대 가발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부장은 “2008~2009년 세계 경제위기 때도 아프리카의 가발 소비는 안 줄었다”며 “아프리카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패션에 대한 욕구도 계속 커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KOTRA 해외전시협력팀 심자용 과장은 “린다는 가발에 ‘익스프레션(Xpression)’과 같은 브랜드 이름을 붙여 상품성을 잘 살렸다. 현지의 신문·잡지는 물론 미용실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한 점도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시장은 특히 중소기업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린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적은 자본으로도 아이디어만 좋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53개국의 인구는 10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15%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대륙의 GDP는 전 세계의 2%에 불과하다. 그만큼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내전이 감소하면서 정치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고, 앞다퉈 개혁·개방에 나서고 있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관료주의로 인해 행정 절차가 지지부진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점, 치안이 불안함 점 등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이 한창이어서 정부 조달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도 호재다. 하지만 이런 조달 사업에 참여 자격을 얻으려면 나라별로 독특한 경제 정책도 꿰고 있어야 한다.

 남아공의 ‘BEE(Black Empowerment Economy·흑인경제육성)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남아공 정부와 국영기업은 이 정책에 따라 정부 입찰 시 흑인 기업에 가산점을 부여한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이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일전선의 자회사로 2008년 남아공에 진출한 LPJ는 이 정책에 맞춰 아예 회사 CEO로 흑인 여성을 영입했다. 이 회사 박성진(56) 이사는 “한국의 송전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정부 입찰에 참가하려면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기술은 물론 가격 경쟁력, 사후 품질 관리, 흑인 고용 비율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LPJ는 지난해 말 남아공 전력청(ESKOM)의 실사를 통과해 현재 입찰 대기 중이다.

 대한전선은 2000년 남아공 회사를 인수해 광케이블 설비업체 ‘엠테크(M-Tech)’를 설립했다. 엠테크가 설립 초기에 남아공 정부 조달 우선권을 따내고, 남아프리카 전체 광케이블·동선 시장의 60%를 장악한 건 BEE 정책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하준영(57) 대표는 “회사 경영에 흑인이 많이 참여할수록 정부 발주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진다. 엠테크의 경우 흑인 지분이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설립 10여 년 만에 직원 400여 명, 연 매출 1억 달러로 성장했다.

 ‘발상의 전환’도 중요하다. 정부가 발주하는 프로젝트만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정부에 사업을 건의해 볼 수도 있다. 트래피스(Trapeace)상사는 남아공 정부에 과속 단속카메라 설치 사업을 제안했다. 교통사고는 많이 일어나는데 단속 경찰이 부족한 실정에 착안했다. 남아공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트래피스는 사업이 성공하리란 확신이 들자 ‘재원은 우리가 대겠다. 사업권만 보장하라’며 역제안을 한 것이다. KOTRA 요하네스버그 센터 관계자는 “현지 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펀딩까지 맡아 한 새로운 사업모델로, 향후 국내 기업이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며 “LED 가로등이나 풍력·태양광 발전사업 등이 민관협력을 하기에 좋은 대상”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심의섭(국제경제학·한국아프리카학회장)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을 적용하기에 아프리카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특히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중소기업인들에게 아프리카 시장은 역사적 호기”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단 기존의 서구적 인식이나 우월의식을 갖고 접근하면 안 된다. 단순한 자원 확보 대상이 아닌, ‘사업 파트너’ 의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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