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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이다.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 4·19 혁명이 일어난 달이다. 1960년 4월 11일 마산에서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게 도화선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 12년 만에 권력을 내놓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권위주의 정권이 득세했던 70~80년대 대학가에선 4월만 되면 ‘민주화 시위’가 잇따랐다. 그 과정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4·19 세대의 다음 세대인 40~50대에게까지 ‘부정선거를 한 독재자’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세대를 건너뛰어 ‘역사의 감옥’에 갇힌 것이다. 운동권 학생들이 애독하던
21세기 들어 이승만 시대를 재평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청년기엔 구국계몽운동, 장년기엔 독립운동, 노년기엔 건국·호국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1904년(29세) 옥중에서 쓴
중국에선 신중국 건설의 주역 마오쩌둥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오에 의해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겪은 덩샤오핑은 “공은 7, 과는 3”이라는 말로 마오쩌둥 격하운동을 잠재웠다. 덩 자신도 천안문 사태를 유혈 진압했지만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의 업적을 더 크게 평가받는다. 미국인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 대해 미·중 수교와 베트남전 종전, 중동평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한다.
우리 근·현대사를 말할 때 흔히들 오욕의 역사라고 말한다. 이승만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을 가차없이 단죄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선진국 수준까지 도약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한반도의 또 다른 반쪽인 북한이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과 정반대다.
대한민국 국가시스템과 지도자, 국민의 힘이 어우러진 결과다. 역사는 선과 악의 게임이 아니다. 역사의 감옥에 갇혔던 인물들에 대한 엄정한 재평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