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갱년기, 페달 밟다 보면 사라집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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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15면

중앙대 스포츠의학센터 서경묵(54·사진) 교수는 50세 때 갱년기 증상을 처음 겪었다. 우선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확 줄었다. 부인이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신경질로 대응했다. 직장에서는 더 심했다. 조금이라도 신경 쓸 일이 있으면 직원들에게 미뤄버리기 일쑤였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생겨도 길게 말하기가 싫어 아예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 ‘명색이 내가 대학병원 교수인데 환자 볼 낯이 없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서 교수의 앞으로 자전거가 쌩쌩 달려갔다. 어릴 적 신나게 페달을 밟았던 자전거가 생각났다. 이를 계기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탔더니 갱년기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권했다. 서 교수가 자전거 전도사로 활동한 지 4년이 된 지금, 중앙대병원에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꽤 생겼다.

중앙대 스포츠의학센터 서경묵 교수의 ‘자전거 예찬’

-본인이 겪었던 남성 갱년기 증상은.
“남성 갱년기가 여성 갱년기보다 무섭다. 여성 갱년기는 폐경이라는 확실한 증상이라도 있다. 남성은 40~50대에 남성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느닷없이 갱년기 증상이 찾아온다.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웬 ‘낯선 형님’이 서 있는 게 아닌가. 그 뒤 건망증도 생기고 자신감도 뚝 떨어졌다. 우울한 기분이 계속되고 발기부전이 일어나는 등 성적 능력도 떨어졌다. 의사라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갱년기 증상이지만, 정작 내게 이런 일이 생기자 당황했다.”

-운동이 특효약이라던데.
“자전거뿐 아니라 수영·달리기·걷기 같은 유산소운동은 모두 갱년기 증상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혈압·혈당 및 체지방량을 감소시키고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자전거 타기에 열중하는 이유는.
“한번 달리고 나면, 다음 날 병원에서 나의 태도가 달라지더라. 몸과 마음이 경쾌하다 보니 저절로 직원들과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게 됐다. 그 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생겼다. 가수 김세환씨가 활동하는 ‘한시반클럽’이라는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영종도 옆에 있는 시도라는 곳까지 라이딩을 다녀오면서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자전거는 어떻게 건강에 도움이 되나.
“자전거는 대표적인 유산소운동이다. 심폐 기능을 강화하고 근력을 키우고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 혈액 순환도 개선된다. 좋은 콜레스테롤(HDL 콜레스테롤)을 높여주고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을 낮춰 동맥경화의 위험을 줄인다. 특히 발기부전의 개선에 도움을 준다. 고혈압·당뇨병·동맥경화증의 조절과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자전거는 달리기나 걷기보다 무릎 관절에 무리가 적은 운동이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도 권한다. 갱년기 남성들이 하기에 자전거만 한 운동이 없다.”

-자전거를 타면 돈이 많이 든다던데.
“애호가들 사이에는 ‘자전거에 한번 빠지면 아파트 전셋값이 날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제로 자전거 매니어 중에는 자전거 업글(최신 장비로 업그레이드하는 일)과 지름신(자제력을 잃고 장비를 계속 구입하는 일)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요즘 내가 타는 자전거는 티탄 제품의 산악자전거 루이가르노다. 몇 년째 타고 있다. 5년 동안 새로 마련한 자전거가 모두 3대다. 지금은 이 3대를 번갈아 가며 탄다. 자전거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드는 운동이다.”

-어떤 자전거를 추천하나.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 의욕을 내세워 몇백만원짜리 고가품을 사서 아파트 베란다에 고이 모셔 두는 사람도 많이 봤다. 초보라면 100만원 이하의 산악자전거나 로드바이크면 충분하다. 좀 더 재미가 붙으면 무게가 가벼운 티탄이나 카본 소재로 갈아타는 것이 자전거족의 기본 공식인 것 같다. 페달을 최대한 밟았을 때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고 일직선으로 펴지는
게 자기 몸에 맞는 자전거다.”

-자전거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부분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서 사고를 당한 경우다. 자전거를 탈 때는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한다. 한강변이나 도로를 달리려면 자전거 수신호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자전거는 깜박이가 없기 때문에 수신호를 모르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자전거 페달에 붙어 있는 ‘클릭(발과 페달을 하나로 묶는 장비)’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들에게는 클릭이 꽤 유용하다. 발에 페달이 고정돼 파워 전달도 잘 되고 속도 내기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초보들에게는 위험하다. 갑자기 정지해야 할 때 발을 못 빼서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 수준에 맞는 장비를 선택해야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자전거를 즐겁게 탈 수 있는 요령은.
“혼자서 동네 주변이나 한강변을 달려도 좋지만 주말에는 여러 사람과 자전거 모임을 여는 것이 좋다. 또래가 여럿 모이면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오고 평상시에 혼자 고민하던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과 ‘국토횡단 자전거대행진’ 같은 자전거 대회에도 출전하다 보니 점점 젊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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